‘국제 간호사의 날' 50주년인 12일 낮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인근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들이 간호사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오늘은 밥 먹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안고 출발합니다. (…) 화장실도 잘 못 가 방광염을 달고 사는 젊은 간호사들이 많지만, 이보다 힘든 것은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거나 할 수 있는 간호를 하지 못했을 때의 죄책감입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8년 차 간호사인 ㄱ씨는 5월초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간호사 1명당 많게는 40명의 환자까지 간호하게 된다”, “물 먹을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참으며 일해도 환자에게 학교에서 배운 간호업무를 다 수행할 수 없다” 등 인력 부족에 시달려 지쳐가는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노동조합에 소속된 간호사들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 5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라”고 촉구했다.
병원 표시가 찍힌 푸른 간호복을 입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 간호사 면허 소지자 수의 2배를 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담당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다 보니 간호사들이 지쳐서 현장을 떠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간호노동팀’이 내놓은 ‘한국의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 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한국의 활동 간호사 수는 평균 3.5명으로 오이 시디 평균 7.2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겨레>가 접촉한 현직 간호사들은 돌봐야 할 환자 수가 너무 많아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4년 차 간호사 김아무개(26)씨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 2명이 환자 70명을 담당한 적이 있다. 환자가 많을수록 신속한 대응이 늦어지는데 문제가 생기면 ‘내가 환자에게 해를 끼쳤다’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동료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2년 차 간호사인 조아무개(24)씨도 “1인당 환자 수가 최대 12명으로 제한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보호자·간병인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돌보는 병동)에서 일하고 있지만, 식사를 거르는 것 당연하고 정신이 없어 물도 먹지 못할 정도로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간호사들은 “지금까지 희생과 헌신만을 바라왔던 간호사의 날에서 벗어나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전면확대 및 인력 기준 상향 △코로나19 등 감염병동 간호인력 기준 마련 등을 요구했다.
‘국제 간호사의 날' 50주년인 12일 낮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인근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들이 간호사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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