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비대면으로 열린 ‘2021 재난참사 피해자 그리고 권리 온라인 포럼’ 왼쪽 위부터 영국 ‘디아이’ 앤 에이어 박사, 왼쪽 아래는 프랑스 ‘펜박’의 마리 그로, 안토인 뒤센 활동가의 모습.
4·16 세월호 참사 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 4년…
수년째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국내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프랑스·영국 등의 재난참사 피해자단체 구성원들과 만났다.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방안 도입한 프랑스와 영국 등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국외 피해자단체 연합은 진상규명 단계부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4·16 재단(이사장 김정헌)은 15일 ‘2021 재난참사 피해자 그리고 권리’란 이름으로 온라인 포럼을 열었다. 비대면으로 이뤄진 이날 포럼에는 국내 전문가와 참사 피해자뿐 아니라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 ‘펜박(FENVAC)’과 영국의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으로 이뤄진 비영리단체 ‘디에이(Disaster Action) 활동가 등 국외 인사들이 참여했다. 4·16재단은 “이번 포럼은 지금껏 국내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재난 참사 피해자들 간 연대의 장을 만들고, 피해자의 권리를 논의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이라며 국제사회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법과 제도에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피해자연합 단체 ‘펜박’은 테러나 재난 희생자, 피해자들이 함께 모이도록 지원하고, 이들이 정부나 언론에 요구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다. 가해자 처벌을 위한 소송도 돕는다.
프랑스에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실현 차원에서 진상규명 단계부터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프랑스 법무부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지침’을 마련해 재해 등 참사 발생 뒤 48시간 이내에 펜박 등 피해자단체 연합이 사건 관련 보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참사 직후 경황이 없는 피해자를 대신해 지원단체가 나서는 것이다. 이를 소개한 경상대학교 유해정 학술연구교수는 “정부의 보고·회의체에 피해자 지원단체가 들어와 이들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도 있고, 피해자 보살핌과 관련한 활동을 할 때도 교수 등의 전문가가 아닌 피해자단체 내에서 훈련을 받고, 정보를 가진 이들이 피해 회복을 돕는 강점이 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이러한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할 경우, 현재까지 재난 피해조사를 검찰·경찰이나 관련 부처가 전담했던 데서 벗어나 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독립적이고 상시적인 재난참사 조사기구를 만들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영국의 단체 ‘디에이’에서 트라우마 교육과 대외협력을 담당하는 앤 에이어(사회학 박사)는 꾸준하고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책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의 인도적 지원의 주요 원칙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적·심리적·법적·재정적 지원을 위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17년 발생한 맨체스터 경기장 폭탄 테러 뒤 영국 정부는 10개가량의 워크샵을 진행해 피해자 회복 업무 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의 관계 및 보건복지적 측면에서의 지원, 이같은 지원의 파급효과와 잠재적 위험 예방책을 두루 논의했다고 한다. 앤 에이어는 “희생자 지원 패키지를 만들어 테러 생존자들을 위해 지역사회 중심으로 수년에 걸친 지원이 이뤄졌다”며 “병원을 퇴원한 생존자는 사회복지사가 그 이후에도 돌볼 수 있도록 했고, 몇몇 유족은 희생자 지원에 대한 전문 훈련을 받은 경찰관을 배정받아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앤 에이어는 또한 “한국의 진상규명은 여러 측면에서 체계가 부족해 보인다”며 “유가족들이 자신의 증언을 꾸준히 (사회에) 나눌 수 있는 장들이 마련돼야 한다. 대중도 이를 지쳐 하거나, 사회가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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