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이하 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불거진 ‘대필’ 의혹을 감사했던 독립기념관 감사부가 “대체 집필자의 원고가 원저자(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직원)로부터 환수한 원고와 동일 또는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사부는 또 독립기념관이 지급한 원고료를 놓고 이뤄진 대체 집필자와 원저자 간 금전 거래가 사기죄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감사부의 보고서를 토대로 수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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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한겨레>가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 관련 특정감사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독립기념관 감사부는 감사의견서에서 “원저자 17명(독립기념관 연구원 13명·국가보훈처 연구관 4명)의 환수원고와 대체 집필자 20명이 제출한 원고를 내부 감사인 3명과 법률전문가 1명이 분석한 결과, 원저자와 대체 집필자의 주장들이 동일했고 문단마다 기술된 내용이 동일하거나 유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부 감사인의 법리적 판단과 내·외부 심의위원들의 심의 결과를 종합하면 이들에 대한 사법적·윤리적 판단이 필요하며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업무방해죄, 사기죄, 업무상 배임죄 등 혐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직 대학교수 등 역사학자들이 인명사전에 실릴 원고를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직원들이 쓴 원고를 받아 일부만 수정하고 자기 이름으로 제출했다는 대필 의혹이 사실이라고 감사부가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필 사건은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직원들이 작성한 원고와 관련해 ‘소속 기관의 직원에게 원고료 지급이 불가하다’는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2016년11월 해당 원고와 원고료 모두 독립기념관으로 환수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직원들은 자신의 원고를 역사학자 등 ‘대체 집필자’에게 넘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감사부가 환수원고 417건(원저자 17명·총 원고료 8932만원)과 대체 집필 원고 396건(대체 집필자 20명·총 원고료 8234만원)을 두 차례에 걸쳐 비교한 결과, 396건의 대체 집필 원고 중 395건(‘일치’ 278건, ‘거의 일치’ 104건, ‘다수 일치’ 11건, ‘다소 일치’ 2건)이 환수원고를 ‘재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불가’ 판정을 받은 원고는 1건에 불과했다. 감사부는 “(원고에 드러난) 필자의 주장(생각과 판단)이 들어간 부분과 참고 문헌이 원저자와 대체 집필자가 동일했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대체 집필자들이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원고료를 받고, 이 중 일부를 원저자에게 돌려줬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부가 원저자 17명과 대체 집필자 20명 중 17명을 상대로 대면·서면 진술을 받은 결과, 대체 집필자 13명이 ‘원저자에게 금액(원고료)을 전달했다’고 답했다. ‘금액(원고료)을 받았다’고 응답한 원저자는 10명이었다. 나머지는 답변을 거부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감사부는 “원저자와 대체 집필자 간 원고료 거래내용은 진술에 따라 확인됐지만, 구체적인 계좌 내역 조사는 사법기관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서에 명시했다.
이와 별도로 독립기념관 내부 위원 3명과 법률전문가가 포함된 외부 위원 3명이 감사조서(감사 수행 결과가 담긴 기록)를 바탕으로 현행법 위반 여부를 심의한 결과, 원저자 17명 중 7명(독립기념관 직원 5명·국가보훈처 직원 2명)의 ‘사기’ 또는 ‘업무상 배임 및 사기’가 성립된다는 판단이 나왔다. 나머지 10명에 대해서도 모두 “수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대체 집필자 20명 중 9명에 대해서도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봤고 11명은 진술거부 등의 이유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도 대필 의혹을 조사한 뒤 “(대체 집필자와 원저자는) 독립기념관의 정당한 원고료 지급업무를 방해했고 같은 방법으로 대상자들이 이익을 취득해 독립기념관에 손해를 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기죄, 업무방해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는 의견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지난 13일 국민권익위원회의,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으로부터 감사보고서 등을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사건이 배당됐고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독립기념관장의 내부 감사 방해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이하 인명사전) 집필자들의 ‘대필’ 의혹을 조사했던 독립기념관 감사부는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이 감사업무에 개입하고 제보자를 찾는 등 위법한 행위로 감사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17일 <한겨레>가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 관련 특정감사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감사지연 및 감사 방해 행위로 ‘기관장 감사업무 직접 개입’ 등이 명시돼 있다. 한 관장은 대필 의혹 조사에 착수했던 신아무개 감사부장에게 감사업무와 관련된 사항을 직접 보고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연루된 의혹을 조사하는 실무자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것이다. 한 관장도 과거 단국대 교수 시절 국가보훈처 직원이 작성한 원고 1건을 토대로 새로운 원고를 작성해 독립기념관에 제출했고 원고료 100만원을 받은 바 있다. 감사부는 한 관장의 원고와 원저자의 원고를 비교해 ‘다수 일치’로 결론을 내렸고, 현행법 위반 여부를 놓고선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부는 보고서에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자체감사 기구의 독립성을 (한 관장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관장이 언론 제보자를 파악하면서 애먼 직원들의 인사조처를 단행한 내용도 보고서에 적시돼 있다. ㄱ씨는 감사부가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기관장이 ‘수사 의뢰를 요청하겠다’고 했고 ‘판단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상당히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제보자가 누군지를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들렸다”고 토로했다. 앞서 한 관장은 <한겨레> 보도 이후인 3월26일 독립기념관 직원 ㄱ씨를 불러 “(내부망) 로그인 기록을 찾아보니 당신이 엄청나게 (인명사전 관련) 자료를 로그인해서 봤다고 하더라”며 “처신을 어떻게 해서 살아날 길을 찾든지, 당할 길을 찾든지 알아서 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제보자로 지목돼 ㄱ씨와 함께 보직해임 인사 조처를 받은 ㄴ씨도 감사부와 면담에서 “정기인사는 7월과 12월인데 4월1일자 인사는 전례가 없고 노사합의로 인사는 1주일 전에 통보하기로 돼 있다. 갑작스러운 인사는 폭거이며 독립기념관의 발전을 위해 십여년간 헌신한 직원에 대한 모욕적 처사”라고 말했다.
감사에 참여한 법률전문가들은 한 관장의 행위를 놓고 공익신고자보호법 제15조(불이익조치 등의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정당한 사유 없이 자체감사활동을 방해했기에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제41조2호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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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 학자들, 남의 글로 ‘무늬만 집필’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5531.html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