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한 여자고등학교의 속옷 규제 내용.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제공
“속옷은 무늬 없는 흰색을 착용해야 한다”(서울 성북구 ㄱ여고), “바리캉을 사용한 짧은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을 금지한다”(서울 강서구 ㄴ여고), “복숭아뼈를 덮는 흰색·검은색 양말을 착용해야 한다” (서울 관악구 ㄷ여고)
청소년 인권단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학생들에게 두발·복장 관련 학교 규제를 제보받아 이러한 규제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18일 진정을 제기했다.
아수나로는 이날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월15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진행한 ‘우리 학교에 아직도 이런 복장 규제가 있어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수나로는 전국 152개(서울 55개) 초·중·고등학교의 두발·복장 규제에 대한 제보를 받아 해당 학칙이 있는 서울 33개 학교를 대상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아수나로는 이러한 규제가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사생활의 자유,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아수나로가 공개한 제보 내용을 보면, 염색·파마·머리 길이뿐 아니라 ‘목선이 드러나서 야하다’ 등의 이유로 ‘똥머리’와 ‘포니테일 머리’(높게 묶은 머리) 등을 규제하는 학교도 다수 있었다. 서울 성북구의 한 고등학교는 똥머리, 포니테일 머리 등에 벌점을 부과한다. ‘복숭아뼈를 덮는 흰색 양말’ ‘피부가 비치지 않는 검은색 스타킹’ 등 양말·스타킹의 길이와 색상, 피부가 비치는 정도를 규제하는 학교도 있었다.
속옷 규제를 준수하는지 검사받는 과정에서 불쾌함을 느꼈다는 제보도 있었다. “속옷 위에 흰색 내의를 입지 않으면 ‘속옷 미착용’으로 경고를 받습니다. 남자 선생님이 손가락질을 하며 속옷 미착용이라고 혼내는 것은 매우 모욕적입니다.”(서울 서초구 ㄹ여고 학생) “규정이 있는 것조차 말이 안 되는데, 교칙에 안 맞는 색의 속옷을 입으면 ‘보여주려고 입고 왔니?’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서울 관악구 ㅁ여중 학생)
이 밖에 체육복 등하교 금지, 교복 착용 시기 및 외투 착용 규제 등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겨울에는 추워서 동태가 될 것 같아요. 학교 창문이 상상 이상으로 얇아서 바람이 다 들어와요. 그런데 외투는 교실 내에서 입을 수 없고, 학교에서 제공한 얇은 가을용 카디건만 입을 수 있습니다. 담요를 덮으니, 담요는 규칙 위반이라며 두르지 말라고 합니다.”(서울 서초구 ㄹ여고 학생) “전 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도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입고가니 제 옷을 빼앗아갔습니다.”(서울 동작구 ㅂ중학교 학생)
지난 3월 학생들의 두발·복장을 규제하는 학칙을 삭제하는 학생인권조례안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했지만, 이들은 학교의 규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아수나로는 “여전히 많은 학교에 학생의 개성 실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두발·복장 규제가 남아 있다”며 “상당수의 학교에서 규제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 벌점 누적에 따른 징계뿐 아니라 생활기록부에 부정적 내용 기재, 취업 및 현장실습 추천 제한 등의 불이익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권위에 피진정 학교장들에게 학칙 개정을,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에게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을 권고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