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목격자 조사 없이 쌍방폭행으로 현행범 체포한 행위는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0일 경찰이 목격자 조사 없이 쌍방폭행을 주장하는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수사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관할 경찰서장에게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주의 조처를 권고했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임대인 ㄱ씨와 ㄱ씨의 아버지는 2019년 8월 임차인과 사무실 인터넷 속도 등의 문제로 다툼을 벌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쌍방폭행 혐의로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에 ㄱ씨는 “경찰이 현행범 체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아버지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적법 절차를 위배하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피진정인인 경찰관들은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상호 흥분한 상태로 고성이 오가고 폭행을 행사하려는 등 추가 범행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현행범 체포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현행범 체포 요건 가운데 범죄의 명백성과 체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당시 현장에서 이들이 서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할 뿐 눈에 보이는 상흔은 없던 상황에서 실제 폭행이 있었는지에 대한 목격자 진술을 듣지 않았다”며 “증거자료인 목격자의 휴대전화 동영상 등도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범죄의 명백성을 판단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들이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신원이 확보된 상태였다는 점, 별다른 저항 없이 경찰서 동행 요구에 응했다는 점 등에 비춰 도주 우려도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현행범이라 하더라도 당장 체포해야 할 사정이 없다면 자진출석, 임의동행을 먼저 고려하는 등 현행범 체포 행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사 비례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들은 임의동행 등 임의적 수사방법에 대한 고려 없이 피해자 등을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함으로써 부당하게 신체에 대한 구속을 초래했다”며 “이는 수사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해당 경찰서장에게 피진정인인 경찰관들에 대해 주의 조처를 하고, 현행범 체포 남용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소속 경찰관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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