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이용 장애인 배재현(42)씨가 서울 도봉구의 한 오피스텔 내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고 있다.
휠체어 표식이 큼지막하게 붙은 장애인용 화장실 문을 열었다. 각종 청소도구가 널려 있었다. 대변기 양옆에 설치된 장애인용 손잡이엔 청소용 집게와 걸레가 걸려있고, 대변기 쪽으로 대걸레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배재현(42)씨가 바닥에 깔린 청소용품을 치우고 화장실에 들어가려 했지만 공간이 좁아 진입이 어려웠다. 가까스로 진입했지만 내부에서 휠체어를 대변기 쪽으로 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지하 4층 지상 15층짜리 대형 오피스텔 상가에서 장애인용 화장실은 1층의 이곳이 유일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느라 진땀을 흘린 배씨는 “장애인용 화장실 사용을 어렵게 만들고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건 장애인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장애인들은 외출할 때마다 화장실 문제를 고민한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된 곳도 드물고, 설치됐더라도 관리가 안 돼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고민이다. 장애인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사회활동을 할 때 이동권과 함께 ‘화장실 접근권’을 1순위로 따질 수 밖에 없다.
<한겨레>가 20일 배씨가 자주 다니는 서울 도봉구 지하철 4호선 쌍문역 주변 1.3km 반경 마트나 음식점 등이 입점한 건물 50곳의 장애인용 화장실 설치 여부를 확인해보니, 단 7곳에만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돼 있었다. 이 중 네 곳은 화장실을 창고로 사용하거나 대변기 고장 등의 이유로 사용이 불가능했다.
“없어요.”, “지하철역 내 화장실을 이용하세요.” 배씨와 함께 쌍문역 인근 거리를 돌며 약국과 병원, 카페, 음식점 등에 들어가 직원에게 건물 내 휠체어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가게 20여개가 입점한 5층짜리 건물에도,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와 가구 매장이 들어선 3층짜리 건물에도 장애인 화장실은 없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됐더라도 ‘무늬만 화장실’이지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건물 10여채를 다니며 허탕을 치다 5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장애인용 남자화장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또 다른 건물에는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지만, 장애인용 화장실 대변기는 고장 나 있었다. 이 건물 맞은편 신축 오피스텔 건물 1층엔 장애인용 남녀 화장실이 각각 설치돼 있었지만, 대변기 위엔 양손으로 번쩍 들기 어려운 상자가 쌓여 있었고, 대변기 주변으론 각종 걸레와 빗자루 등 청소도구가 사방에 가득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역 인근 지상 15층짜리 오피스텔 1층에 있는 장애인화장실 모습.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외출 전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걸 피한다. 변씨는 “이동 중에 화장실 갈 일을 피하려고 외출 전엔 물과 음식을 아예 입에 대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양아무개(32)씨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 헤맨 경험은 셀 수 없다”며 “화장실이 없어 외부활동을 할 땐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 사회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장애인 개인이 해결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단체는 그동안 장애인들의 화장실 접근권을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과 사후 점검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법으로 장애인 화장실 설치를 강제하고 있지만,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업장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1998년 4월 이전에 건축되거나 300㎡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 등에 대해선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일률적으로 면제하고 있다. 모두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곳들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소규모 사업장이라 화장실 설치가 어려운 경우라도 장애인들을 위한 화장실 운영 관련 계획을 제출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설치된 화장실이 제대로 운영되는지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역 인근 오피스텔에 설치된 장애인화장실 모습.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