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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익명게시판 폭로’ 단속 급급한 IT기업들…아예 가입 차단도

등록 2021-06-03 17:22수정 2021-06-04 02:48

모니터링 기본…신고 통해 글삭제 의심
‘블라인드’ 등 가입 차단하는 기업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계열 온라인 쇼핑회사 인사팀에서 일하는 ㄱ씨의 일과는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게시물을 올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 게시물이 눈에 띄면 화면을 캡처(갈무리)해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정도가 심한’ 글들은 ‘유해 게시물’로 신고해서 삭제되게끔 한다.

3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블라인드를 비롯한 직장인 익명 소통공간들은 ㄱ씨의 회사에서만이 아니라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의 ‘관리대상’이 됐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기업에서 과로와 조직문화, 성과평가 방식 등을 둘러싼 문제가 연일 불거지는 가운데, 회사의 문제를 온라인 익명게시판을 통해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회사의 문제점이나 소문이 외부에 퍼져 나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기업 관리부서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는 모양새다.

중견 IT회사인 ㄴ사에서는 최근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가입할 길이 막혔다.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애플리케이션으로, 회사의 전자우편을 통해 자신이 어느 회사 소속인지를 인증해야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ㄴ사의 전자우편 계정에서 블라인드에서 오는 우편이 차단돼버렸다. 직원들은 몇 해 전 ㄴ사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 뒤로 “우리 회사에 절대로 입사 지원을 하지 마라”는 악평이 게시판에 줄을 잇자, 회사가 앱 가입을 차단해버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ㄴ사의 한 직원은 “괜히 가입을 시도했다가 인사팀에 그 사실이 알려질까 봐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의 계정을 빌려 블라인드 게시판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최근 블라인드 IT기업들의 게시판에서는 게시물이 ‘빛삭’(빠른 삭제)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IT기업 게시판의 경우 최근 회사의 조직문화 등을 성토하는 글이 40건 넘게 올라왔다. 그러나 이 중 3개는 올라온 지 30분 이내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시자가 직접 삭제했거나 ‘누군가’ 앱의 ‘신고하기’ 기능을 이용해 글이 삭제되게끔 한 것으로 추정된다. 몇번 이상 ‘신고하기’가 눌러지면 블라인드는 글을 삭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앱을 이용하는 직원들은 그 누군가가 인사팀 등 회사의 관리부서 사람들일 것으로 의심한다. IT기업의 한 직원은 “낮과 초저녁에는 회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10분 이내에 삭제되지만 밤 10시가 지나서 올라온 글은 잘 삭제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근무하려면 ‘야근 기안’을 따로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이 시간대에는 회사의 특정 부서에서도 게시판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의심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물론 IT회사들은 “블라인드는 외부 플랫폼이어서 회사가 전혀 개입할 수 없고, 따로 관리할 수 없다”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상당수 IT기업의 홍보·인사팀 직원들은 “블라인드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토로한다. IT회사의 경우 온라인 공간에서의 익명 소통에 익숙한 20·30대 젊은 직원들의 비중이 높다 보니 익명 앱을 중심으로 불만을 공유하고, 나아가 ‘공동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에서는 지난 2월 한 직원이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총대’(총대를 멘다는 뜻)로 나서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청원을 넣었다. 쿠팡의 한 자회사에서는 450명 이상의 직원이 네이버 ‘밴드’에 익명게시판을 만들어 노동조합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 비판을 올리면서 언론이나 수사기관 구성원들이 볼 수 있게 설정하기도 한다. 외부에 알리며 공론화를 해달라는 것이다. 한 IT기업 홍보팀 직원은 “익명게시판에 사내 불만, 특정 직원의 신상정보, 부서 내 갈등 등이 퍼지는 경우도 있어 블라인드를 유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이 직원들의 익명 소통을 ‘입막음’하기보다는 여기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건의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사내 소통 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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