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한 리얼돌 체험방. 이우연 기자
"XX참치. XX도너츠. 리얼돌 체험방….” 6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에 있는 한 상가 지하 1층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벽면에 붙은 상가 층별 안내판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부모는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아이를 서둘러 태웠다. 하지만 건물 내부 곳곳에 붙어 있는 ‘리얼돌 체험방’을 알리는 문구를 이들이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리얼돌(신체를 본뜬 전신 실리콘 인형)을 이용해 사실상 유사 성행위 영업을 하는 ‘리얼돌 체험방’이 아동과 청소년이 지나다니는 학교와 주택가 인근 상가로 퍼지고 있다. 이날 찾은 민락동의 한 상업지구에선 24시간 운영하는 리얼돌 체험방의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해당 업소가 있는 7층에서 내리자마자, 업소 정문 옆에는 리얼돌 사진이 여러장 붙어 있었다. 건물 바로 앞이 주택단지인 만큼 상가 내부와 인근에는 청소년과 아동이 많았다. 같은 건물 5층 교회 앞 복도는 예배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액체괴물(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대여섯명의 아동이 있었다. 1층에도 가족 단위 방문이 잦은 커피와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자리하고 있었다. 잡화를 파는 가게에는 ‘팝잇’(뽁뽁이 장난감)과 같은 장난감을 사려는 어린이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맞은편 상가 6층에 들어선 키즈카페와 스터디카페에서도 업소 간판이 정면으로 보였다.
체험방과 같은 상가에 있는 한 상점 주인은 “인근에 초등학교만 세 군데가 있다”며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이 사는 주택가에 그런 곳이 버젓이 들어설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상가 안 교회의 이아무개 목사는 “6층에는 주민자치센터 별관이 있어 어린이들이 컴퓨터 등을 배우러 드나들고, 4층 코인노래방도 교복 입은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한다”며 “이전에 해당 위치에 있던 마사지업소가 유사 성행위 영업으로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달 25일 갑자기 리얼돌 체험방 간판을 걸며 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리얼돌 체험방 맞은편에 있는 키즈카페와 스터디카페. 이우연 기자
리얼돌 체험방에서 유사 성행위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 성인용품판매점으로 분류돼 허가 대신 신고만 하면 되고, 성매매방지특별법의 적용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용품점은 학교로부터 직선거리 200m까지인 교육환경보호구역 안에서 영업이 불가능하지만 그 밖에서 영업은 자유다.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교육청에서도 업소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렵다.
이날 한 리얼돌 체험방 업체의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전국 50여개 매장의 위치와 리얼돌 사진, 가격, 연락처 등이 게시돼 있었다. ‘합법’이라는 설명과 함께 창업 상담을 홍보하는 배너도 뜬다. 별도의 성인인증을 거치지 않아도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리집에서 ‘영업중’이라는 공지를 보고 찾아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리얼돌 체험방은 오피스텔과 원룸, 연립주택이 밀집한 평범한 주택가에 있었다. 간판이 달려있지 않아 외부에 노출이 되지는 않았지만 100m 거리에는 어린이공원이, 약 200m에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50여m 떨어진 성당에는 일요일을 맞아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오갔다.
서울 홍대 근처 오피스텔에서 운영중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건물에도 간판이나 업체 이름을 알리는 팻말은 없었지만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6학년 두 딸과 주변을 지나던 정아무개(43)씨는 “아이들이 (리얼돌 체험방에) 너무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200m 제한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얼돌 체험방의 확산으로 참다못한 주민들이 나서고 있다. 지난달 31일 민락동 주민으로 추정되는 이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의정부시에 리얼돌 체험방 영업을 중단시켜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다. 리얼돌 체험방에 대한 부정 여론이 커지자, 경찰청은 단속근거를 마련해 이 체험방의 불법행위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6일 경찰청은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주거지역에서 리얼돌 체험방 영업이 확산하고 있다”며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 논란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 청소년들의 성인식 왜곡을 막고자 단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반인이 통행하는 장소에 리얼돌 체험방 전화번호, 주소·약도, 인터넷 주소, 전자우편 등의 정보가 담긴 간판이나 전단을 포함한 광고물을 내걸면 청소년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경찰청의 판단이다. 또 온라인 광고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임을 표시하지 않거나 성인인증 등 청소년 접근을 제한하는 기능을 적용하지 않으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건축법상 위락시설(일반유흥음식점 등)에 적용되는 시설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건축법 위반도 적용할 방침이다.
서울·경기남부·경기북부청은 여성가족부, 지방정부와 함께 오는 7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합동 단속을 벌이고, 다른 시·도경찰청은 시·도경찰위원회에 관련 안건 심의·의결을 신청해 단속할 계획이다.
이우연 채윤태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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