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여성의 부양의무자를 시부모로 지정하는 질병관리청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지침이 차별적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7일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인권위는 지난 4월23일 질병관리청장에게 “희귀질환자의 의료비 지원사업에서 성별에 따라 부양의무자 기준을 달리 정한 질병관리청의 행위는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진정인 ㄱ씨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은 후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한 의료비를 신청하려던 중, 시부모의 소득내역 제출을 요청받았다. 기혼여성은 시부모가 부양의무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ㄱ씨는 “결혼한 남성은 친부모가 부양의무자로 지정되는 것과 달리 결혼한 여성은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의무자로 지정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이를 개선해달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이 사업의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의 부양의무자 가구 산정기준을 준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은 수급권자의 친부모가 부양의무자가 되는 반면,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은 별도로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사람’ 조항을 마련해 남성·여성 지원대상자의 부양의무자 적용 기준을 따로 두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권위는 질병관리청이 “남성과 달리 혼인한 여성의 친부모를 부양의무자에서 배제하고 배우자의 부모인 시부모를 부양의무자로 선정한 것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질병관리청은) 혼인한 여성은 ‘출가’한 존재이고, 혼인한 여성의 가족관계성을 고려할 때 시가, 시부모를 주요하게 고려하는 전통적 가족개념 및 사회적 통념에 따라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의무자로 선정했다고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가치에 따른 호주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폐지됐고, 오늘날 경제활동 및 사회 전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고 가족관계도 부부를 중심으로 가족구성원 개인의 자율적 의사가 존중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장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제도와 규범 속에 남아있는 성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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