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베이비트리

오줌을 땀이라 우기는 아들…산 너머 산

등록 2014-10-17 11:13수정 2014-10-17 11:29

사진 윤영희씨 제공.
사진 윤영희씨 제공.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바로가기)에는 기자, 파워블로거들의 다양한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언젠가 베이비트리의 이벤트를 통해 읽게 된 책,
<엄마,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엄마에게 아들은
입힌 지 몇 초밖에 되지 않는 바지에 구멍을 내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존재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없이 정말, 그렇다.
아들의 옷 중엔 절대적으로 하의가 부족한데, 큰 맘먹고 사준 새 바지를
흐뭇한 마음으로 입혀놓으면 집을 나서자마자 구멍을 내버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새 바지가 너무 아깝기도 하고 감당이 안돼서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바지들을 입혀놓으면,
그건 또 어찌 그리 쉽게, 무릎 부분이 너덜너덜해지는지.
이래저래 아들의 바지는 부지런히 얻어입히고, 새로 사고 해도 늘 부족한데
거기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아들은 한번 놀이에 빠지기 시작하면, 화장실 가야한다는 걸 잊어버리거나
한껏 흥이 오른 놀이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재밌는 놀이를 다시 못하게 될까봐
걱정인지, 거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소변을 참는 버릇이 있다.
참다참다 뛰어가 화장실에 다다랐을 때엔 다급함이 이미 절정을 넘어선 터라
바지랑 속옷에 젖는 양 1/3, 변기에 조준되는 양 1/3,
그리고 나머지 1/3은 변기 주변에 ...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집에서야 그렇다치고 유치원이나 친구집에서도 이러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지니까 꼭 미리미리 볼일을 보고 놀자며
아무리 얘기하고 가르쳐도,
어른의 훈육은 아들의 놀이를 향한 몰입과 즐거움을 이기지 못했다.
이렇게 적신 바지를 하루에도 몇 벌씩 빨다보니
멀쩡하던 바지도 금새 헌 옷이 되곤 했다.

6살이 되고는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얼마 전에 또, 변기 주변이 물바다가 되어있는 걸 목격한 엄마,
거실에서 놀고있는 아들을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니가 또 그랬지?? 얼른 여기 와봐!"
화장실로 온 아들이 변기 주변을 힐끗 보면서 하는 말,

"그거, 땀이예요."

... ..."머시라?? 이게 왜 땀이야?"

"더워서 땀 흘린 거라구요."

아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놀다 멈춘 장난감들에게로 얼른 돌아갔다.
하... 오줌을 땀이라 우기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났다.
요즘 아들과는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은데
딸과 나누는 대화가 '예상가능한' 이라면,
아들과의 대화는 늘 이렇게 '예측불허'다.

지금까지 아들의 습관이나 행동을 교정하려 할 때,
긴 설교와 잔소리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걸 이미 깨달은지라
아들의 "땀" 발언에 대해,
왜 변명하느냐, 거짓말하느냐 야단치지 않기로 했다.
<엄마,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다>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때나 야단을 칠 때
가급적 적은 수의 단어를 사용하라.
어휘 수를 최소로 유지할수록 논쟁의 가능성도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그날 이후로, 아들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뒤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들! 화장실에서 땀 흘리지마~."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씩 웃으며 바지를 내린다.
아들 키우기는 정말 내 뜻대로 안된다. 산 너머 산.
구불구불한 산길을 드라이브하다
갑자기 뛰쳐나온 동물에게 깜짝깜짝 놀라는 기분이랄까.

이런 엄마 마음은 아랑곳없이
아들은 오늘도 제 갈 길을 간다.
동네를 산책하다 사진 한장 찍자고 돌아보라며 수십번 외쳐도
까불까불 자기 노는데만 정신팔다, 앞만 본 채 브이자를 그린다.
에휴.
아들은 내가 만난 남자들 중에 가장 어려운 남자..
이 다음엔 또 뭘 가지고 우기려나.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두 아이와 함께 일본에서 살고 있다. 남들이 학원 언제 보낼까 고민할 때, 아이에게 부엌칼을 언제 사 줄까 고민하는 엄마다. 많이 소유 하기보다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일상을 꾸리는 게 삶의 목표라, 일본 친구들과 그림책과 요리를 테마로 한 육아모임을 꾸리며 실험 중. 지식보다는 상상력으로 채워 온 지난 10년간의 아날로그 육아이야기를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계간 <창비어린이>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alog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