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시사타파티브이(TV) 영상 갈무리
“페미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페미니즘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한 것인데, 정치권 일부와 여성계에서는 맥락과 표현 모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추 전 장관 쪽은 “페미니즘이 필요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일종의 반어법, 정치적 수사”라고 해명했다.
지난 23일 대선 출마 선언 뒤 여론조사에서 단숨에 여권 후보 3위에 안착한 추 전 장관은 26일 여권 성향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추 전 장관은 방송에서 출마 선언 계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행보 등을 밝혔다. 페미니즘 관련 발언은 진행자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한 질문에서 나왔다. 진행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반페미니즘 정서를 형성해서 20~30대 남성 표를 모은 측면이 많다. 제가 보기에 그것도 잘못이고 정의당류 극단적 페미니즘도 잘못인 거 같다”며 국민의힘과 정의당을 싸잡아 비판한 뒤 “추 장관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여성주의와 남녀평등 시대를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추 전 장관은 판사로 일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내가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걸 안 하고 개척해 나가야지만 여성도 남자와 똑같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라고 남자들이 깨달을 것이다. 그럴 때 기회가 똑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회 공정을 원했지 특혜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발언은 일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중에 나왔다. “저는 페미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엄마만 헌신적인 게 아니다. 아버지도 엄마 없는 가정에서 헌신적이다. 항상 가정에 핑계가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 나왔으면 사적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공적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걸 제가 강조해왔다. 그런 속에서 남녀 간 경계심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져야 되는 거다. 그래서 여성이 여성권리를 자꾸 보호하겠다가 아니라 남성이 불편하니까 우리 남녀 똑같이 합시다, 이렇게 해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페미가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20대의 공정성을 살리려면 이런 정서적으로 이해해주는 게 더 먼저 필요하다.”
당장 진행자가 “극단적 페미니즘”을 한다고 언급한 정의당에서 날선 비판이 나왔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추 전 장관 발언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한 지독한 곡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강 대표는 “페미니즘은 여성을 꽃처럼 대접하라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을 사람으로 대접하라는 사상이다. 페미니즘은 기회 공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와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이지, 특혜를 달라는 목소리가 아니다. ‘페미 반대’ 발언이 표를 얼마나 끌어모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의 무책임을 똑똑히 기억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함께 실감하길 바란다”고 했다.
같은 당 심상정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20년 전 인터뷰 기사인 줄 알았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삶이 곧 페미니즘이고, 모든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라고 썼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가지며, 성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등장한 사회 운동이다. 여성계에서는 추 전 장관이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페미니즘이 여성 권리만을 옹호하는 운동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대표는 추 전 장관의 ‘페미니즘 필요 없는 세상’ 발언에 대해 “여성을 꽃으로 규정하고, 여성을 가정에 얽매이도록 만든 건 남성 중심의 사회”라며 “이제야 여성들이 일·가정 양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페미니즘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페미니스트인 세상이 맞는 거다. 그래야만 성차별적 구조를 평등한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했다.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시민의 합당한 요구를 감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추 전 장관의 발언이)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안 사무국장은 “추 전 장관은 (여성에) 징징대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폭력을 당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과 공정을 엮은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라영 예술사회학자는 “기존의 여성운동을 마치 여성들이 특혜를 주장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공정성과 엮으면 ‘여성할당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이준석 주장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페미니즘과 선을 그어야 정치적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추 전 장관 쪽은 해당 발언이 “정치적 수사”였다고 해명했다. 추 전 장관 쪽 관계자는 “‘페미에 반대한다’는 말은 일종의 반어법이었다. 페미니즘 자체가 없는 사회가 돼야 하기 때문에 쓴 정치적 수사”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운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를 만들어서, 페미니즘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을 역설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박고은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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