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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해묵은 ‘여가부 폐지’ 깃발…누가, 왜 흔드나

등록 2021-07-08 05:00수정 2021-07-08 07:16

국민의힘 대선주자 이어 당대표까지
성폭력 대응 등 20년 정책성과 부정
현실문제 외면한 채 ‘분열정치’ 부추켜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차관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여가부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를 거론하면서 “이런 분들이 우리 여성가족부가 없다면 어디에서 이런 도움을 받으실 수가 있을까”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차관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여가부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를 거론하면서 “이런 분들이 우리 여성가족부가 없다면 어디에서 이런 도움을 받으실 수가 있을까”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유승민 전 의원)

“여가부는 젠더갈등을 부추겨왔다.”(하태경 의원)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했다.”(이준석 당 대표)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에 이어 7일 당 대표까지 ‘여가부 폐지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들의 발언은 △성폭력 대응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 수립 등 여가부의 고유한 역할을 외면하고 △노동시장 성별격차, 젠더 폭력, 돌봄노동 편중 등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별을 가르는 소모적 분열의 정치를 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 여가부 폐지론은 정권 교체기 전후 때마다 등장할 정도로 해묵은 논란이다. 2008년 1월 당선자 신분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여성가족부를 평가 절하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17년 대선을 치를 때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적은 예산과 권한 속에서도 여가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은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인 해바라기센터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해온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이 대표적이다. 2018년 4월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운영을 시작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경찰 등과 협조해 불법촬영물 삭제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 센터가 지원한 피해 건수는 30만5996건에 이른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대해 “유사한 문제로 씨름하는 다른 국가에도 모범이 될 만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여성의원·여성단체가 여가부 존치와 강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여성의원·여성단체가 여가부 존치와 강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최근 개정안이 통과된 ‘양육비 이행법’을 추진해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인 여성과 아동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한 것도 보건복지부가 아닌 여가부였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시작된 ‘아이돌보미’ 사업의 경우, 시설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이용가구는 56만6033가구에 이른다. 그동안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공론화했던 민간 사이트 ‘배드파더스’ 의 구본창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양육비 이행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여성가족부를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다. 여가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권한과 예산을 늘려줘야지, 폐지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성계 안에서도 여가부가 여성 권익 향상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엔 이명박 정부 때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하면서 예산을 1조1994억원에서 2008년 539억원으로 90% 이상 줄이는 등 여가부를 축소하려는 정부 차원의 비협조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논란은 대선을 의식하고 이른바 역차별을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여성계에서는 우려를 드러낸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여가부에 대한 관점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가부의 예산을 의무 복무 다녀온 청년들을 위해 쓰겠다’ ‘여가부 장관은 전리품이다’ 같은 여가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주장까지 이 범주로 보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여가부 장관을 역임한 두 인사도 여가부 폐지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역임했던 김금래 전 장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 90여개 나라가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두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부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가부가 유일하다”고 했다. 역시 이명박 정부 때 장관을 지낸 백희영 전 장관도 “고용현장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불이익과 폭력은 아직도 매우 심각하다. (각 부처가 여가부 업무를 나눠 하면 된다는 주장은) 시기상조이고, 하필 선거철을 앞두고 이런 주장이 나온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WEF)가 발표한 ‘2020 세계 성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53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권이다. 성별임금격차 역시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1위다.

유승민 전 의원은 여가부 폐지 대안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제안했다. 하지만 여가부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기본적으로 위원회는 자문·조정 기관이지 집행 기관이 아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해도 성평등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지 의문”이라고 했다. 1998년 대통령 직속으로 ‘여성특별위원회’가 있었지만 이에 부족함을 느껴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됐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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