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면접 당사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기득권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잖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너무 신경쓰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그가 <한겨레> 온라인 칼럼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20대 여성인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서 경험을 엮어 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 입니다.
※ ‘쿵쾅’은 단단하고 큰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크게 나는 소리를 뜻합니다. 일부에선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가리켜 ‘쿵쾅이’라고 부릅니다. 페미니스트를 입막음 하려는 이들이 ‘쿵쾅’의 의미를 변형·독점하려는 시도를 ‘김쿵쾅’이라는 필명을 통해 유쾌하게 맞받아주려 합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승진 면접이 있었다. 입사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나 같은 신입은 승진 면접을 보지 않는다. 그날따라 잘 차려입은 동료들을 보니 느낌이 묘했다. 나보다 2년 먼저 입사했지만 같은 사원인 동료가 면접에 들어가는 걸 보니, 통과만 하면 주임이라는 직급을 달고 나보다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조금 오버인 걸 알지만 대학 시절부터 일 욕심 만렙을 찍었던 나는 순간 ‘나도 특진 신청할 걸 그랬나’하는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후회는 ‘나는 언제 승진하지? 나도 임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차 직장 여성의 승진에 관해 어떤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찾아보다 마셜 골드스미스가 쓴 <내 일을 쓰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내 일을 쓰는 여자>는 여성들이 더 높은 자리에 가지 못하는 이유, 승진 부진에 대한 이유를 성차별 등 외부 환경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격 특징에 집중해 풀어나간다. 물론 책에서 저자도 지적하지만 여성의 승진을 방해하는 것은 성차별 등 외부 환경의 탓이 매우 크다. 분명 외부 환경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바뀌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책에 의하면, ‘여성이 생각하는 성공’과 ‘남성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 ‘무엇이 직장 내에서의 성공이냐’라는 질문에 공통으로 ①회사에서 팀을 이끄는 것 ②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것 ③일로 인정받아 느끼는 성취감을 ‘성공’이라 말했다. 이러한 공통점을 제외하면 여성은 ①하루하루를 즐길 수 없다면 지위와 연봉이 높아도 남성만큼 만족하지 못하고 ②승리나 독점을 하게 됐을 때 남성보다 만족감을 덜 느낀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고는 ‘어라, 근데 나는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지위나 연봉이 조금 낮아도 되지만 승리나 독점에서 엄청난 성취감 느끼는 사람인데, 난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직장에서 여성들이 보이는 특성을 조금 더 읽어보기로 했다.
① 여성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자신이 조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타인이 알아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과시하거나 잘난 척하지 않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② 인맥을 활용하는 것, 소위 말하는 ‘정치’ 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한다. 이는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보다 사람을 그 자체로서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 때문이다.
이 내용을 읽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선, 나는 내 능력과 업적을 여기저기 적극적으로 알려 주위 사람이 무언가 중요하고 또 가치 있는 일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때 나를 먼저 떠올리게 해서 성장의 기회를 잡는 타입이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뒤에서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 여자애가 기가 세다는 둥, 똑똑한 게 좀 지나치다는 둥, 거만하다는 둥…. 나는 인맥을 활용하는 것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공정성의 틀을 기본적으로 갖춘 상태에서 평소 신뢰 관계를 구축해온 인맥을 활용해 기회를 잡은 적도 몇 번 있다. 마찬가지로,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책 내용을 읽고 내 모습을 돌아보니 혹시 내가 욕을 들은 이유가 ‘평소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남성이었어도 그렇게 욕을 먹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럼 결국 나처럼 ‘여성의 특성’을 ‘극복’해도 어쩔 수 없이 욕은 많이 먹는다는 말인가?
‘여자처럼’ 하면 욕은 안 먹지만 성공을 못 하고, ‘여자처럼 안 하면’ 욕은 먹지만 성공하는 것이라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욕을 안 먹는 게 내 밥줄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지난번 읽은 책인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라는 책을 읽고 내가 친구들과 냈던 결론이 이와 비슷했다. ‘돈 많이 벌자. 그러려면 사회에서 사라지지 말자.’ 그렇다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승진을 해야 한다.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여자처럼’ 행동해서 사회에서 사라질 바에는, 기 세고 이기적인 여자가 되어 직장에서 살아남고,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편을 택해야겠다. 답이 나왔다. 이번 연말, 특진 신청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