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면접 당사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기득권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잖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너무 신경쓰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그가 <한겨레> 온라인 칼럼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20대 여성인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서 경험을 엮어 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 입니다.
※ ‘쿵쾅’은 단단하고 큰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크게 나는 소리를 뜻합니다. 일부에선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가리켜 ‘쿵쾅이’라고 부릅니다. 페미니스트를 입막음하려는 이들이 ‘쿵쾅’의 의미를 변형·독점하려는 시도를 ‘김쿵쾅’이라는 필명을 통해 유쾌하게 맞받아주려 합니다.
‘노브라’
올여름 한의사가 나에게 내린 처방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가 있었고, 중학교 때부터 약 10년간 저혈압에 시달렸다. 그런 나에게 브래지어는 그야말로 ‘독’이었다. 브래지어가 가슴 주위를 꽉 누르고 있으니 혈액순환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이로 인한 저혈압은 설상가상으로 아토피와 만나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었다. 브래지어는 평소에도 아주 답답했지만, 여름만 되면 더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가슴을 받쳐주는 심(와이어) 근처와 등 쪽 훅 주변에는 땀이 특히 잘 찼는데, 아토피와 땀띠가 만나 가슴과 등이 늘 가려웠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엄청난 가려움에 시달렸고, 긁은 곳은 빨갛게 부어올라 금방 주위로 번졌다. 팔과 다리는 민소매와 반바지 덕에 괜찮았지만, 가슴과 등, 배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내게 ‘노브라’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런데 요즘은 ‘노브라’라 부를 게 아니라 ‘유(有)브라’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여성의 가슴에 브래지어를 한 것이 ‘디폴트(기본값)’가 아니기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라는 뜻인 ‘노브라’라는 말을 쓰기보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걸 ‘유(有)브라’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브래지어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몸에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노브라는 이상한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초등학생 때부터 쭉 브래지어를 착용해왔다.
최근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집을 읽었다. 7개의 페미니즘 단편 소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인데, 여기에 수록된 <이방인>과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라는 소설이 나의 ‘탈 브라’와 조금 시선이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에서는 ‘율’의 과장을 비롯해 처음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저 손에 습진을 가졌을 뿐인 ‘율’에게 “손은 어쩌다 그런 거냐” “병원은 가 봤냐”라고 끈질기게 묻는다. ‘율’의 손을 끊임없이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만드는 장면들이다. 이 장면은 브래지어 대신 니플 패치를 선택한 내게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페미 뭐 그런 거’인지를 묻는 장면과 겹쳐 보였다. ‘그저 습진일 뿐’인 ‘율’의 손과 ‘그저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을 뿐’인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의 의도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율’은 끊임없이 손에 대한 질문을 받다 결국 습진이 있는 부분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다닌다. 나는 ‘율’이 손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기 위해 붕대를 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붕대를 감으면 오히려 눈에 잘 띄고 더 많은 ‘이상한’ 질문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목이 <이방인>인 것도 아마 ‘율’을 끊임없이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어내려는 사회에 대해 ‘율’이 자신을 칭하는 방식이 아닐까
<이방인>의 다음 소설인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주인공인 ‘표’가 한 섬에서 열리는 여장대회에 출전한 날, 의문의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도망치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자세하게 나온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딱 달라붙어 벗기도 힘든 원피스, 높은 구두, 제대로 지워지지도 않는 초강력 메이크업까지. ‘표’가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장면에서 ‘여성의 옷’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더 정확하게는 심각한 방해가 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성의 옷은 왜 생존에 불리하게 만들어졌고, 브래지어같이 불필요한 기능만 있는 옷이 많은 걸까. 내 옷은 어떤가 옷장을 슬며시 살펴보니, ‘표’가 ‘여장’을 위해 입었던 옷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옷이 곳곳에 보였다. 딱 달라붙어 밥을 양껏 먹지도 못하는 티셔츠와 짧은 크롭티, 스키니진, 7cm가 넘는 펌프스힐, 아토피와 저혈압을 악화시키는 브래지어 등 말 그대로 ‘미관’만을 위한, 건강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옷들이 가득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동안 입었던 저 옷, ‘표’가 입던 그런 옷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생존’을 위해 처음으로 펑퍼짐한 박스티를 사봤다. 박스티를 입으니 굳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미관’ 상의 문제도 없었다. 브래지어가 아닌 니플 패치를 붙이고 나간 첫날은 어색하고 ‘정상성’에서 벗어난 느낌에 왠지 사람들이 다 내 가슴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길에서 남들 가슴만 쳐다보고 다니지 않듯이, 남들도 내 가슴을 쳐다보고 다니지 않았다. 처음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시작한 탈 브라였지만, 이제는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브래지어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율’에게 손은 어떻게 된 거냐 묻듯이 내게 혹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냐고 물어도, ‘율’이 손에 붕대를 감아 이슈를 당당히 드러냈듯이, 나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것이다. 그래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