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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페미 채널이다!” 반대하자 이재명 후보는 출연 약속 뒤집었다

등록 2021-12-29 19:21수정 2021-12-29 19:36

28만 회원 유튜브채널 출연 약속 뒤
일부 남성들 “페미 성향” 비판하자
촬영 1주일 앞두고 “출연 무기한 연기”
“여성유권자에 대한 인식 보여줘” 지적
지난 27일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 올라온 이재명 후보 출연 공지 이미지. <씨리얼> 갈무리
지난 27일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 올라온 이재명 후보 출연 공지 이미지. <씨리얼>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유튜브 채널 <씨리얼> 출연을 돌연 취소했다. 남초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해당 채널이 “페미 성향”이라며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지 이틀 만이다.

2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는 내달 6일 <씨리얼>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비에스(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은 27일 “대선판에 실망한 사람들의 자조모임이 열린다. 이번 모임에는 기호1번 이재명 후보가 함께한다”며 이 후보의 출연을 예고하는 공지글을 올렸다. 이후 디시인사이드에서 이 사실이 공유되며 이용자들 사이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튿날인 28일 오전 9시에는 김남국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온라인소통단장이 “<씨리얼> 출연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다. (…) 여러분들이 주신 의견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누락 없이 일정 담당하시는 선배님께 꼭 전달하겠다”고 공지글을 올렸다. <씨리얼>은 이날 오후 이 후보 측으로부터 “(출연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사실상 취소 통보를 받았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도 2주 전에 “닷페이스는 이재명 후보와 지금까지 대선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여성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현장에서 남겨 주신 코멘트 중 일부를 선정해 직접 읽어 드립니다”고 공지했으나, 막상 출연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씨리얼>은 자살 유가족·플랫폼 노동·친족성폭력생존자·왕따 경험자 인터뷰 등의 이슈를 의제화해 온 매체다. 이 후보는 지난 201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이미 한 차례 이 채널에 출연해 청년 주거·취업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커뮤니티 안에서 이 후보의 출연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장 극단적 의견을 수용해 약속을 뒤집은 셈이다.

대선 후보가 특정 매체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자의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출연을 번복하는 과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다양한 성향의 매체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국민을 대변하겠다고 나오는 대통령 후보가 이들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공약을 밝히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며 “그 정도의 용기와 결단력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 후보가 ‘이대남’ 이탈을 막기 위해 출연을 번복했다고들 하지만, 반대로 조카 교제 살인 사건 변호 등 까다로운 질문을 피하기 위해 소위 ‘이대남 프레임’을 이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느냐”고도 했다.

여성 유권자에 대한 이 후보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씨리얼>이나 <닷페이스>는 젠더 감수성에 기반한 양질의 콘텐츠, 그간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던 의제 선정 등을 통해 밀레니얼 유권자의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왔다. <씨리얼> 구독자는 28만명을 상회한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런 뉴미디어 지형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페미’ 이슈를 다뤘다고 출연을 반대하는 일부 극성 지지자의 의견을 수용해 출연을 철회한 것”이라며 “이번 출연 번복은 현 여론 지형에서 ‘이대남’이 얼마나 과대 대표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권 소장은 “1020세대와 여성 유권자 상당수가 이번 출연 번복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며 “남성 지지자의 여러 스펙트럼의 의견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반응을 선대위에 전달하고, 그 결과 후보에 대한 여성 유권자의 실망감을 조장하게 한 김남국 의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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