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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릴 정도의 공포, 이유가 있다

등록 2022-03-08 18:56수정 2022-03-08 21:54

목적지와 다른 방면으로 달리자
차량서 뛰어내려 결국 사고사
같은 길 오가던 시민 “공포감 이해”
여성들, 성희롱·추행 택시 경험 공유도
경찰, ‘소통 오해’ 가능성 두고 수사 중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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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북 포항시에서 달리던 택시에서 뛰어내린 20대 여성이 뒤따른 차량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숨진 여성은 택시기사가 자신의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차를 몰자 남자친구에게 불안감을 호소한 뒤 차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승객과 기사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포함해 사고 경위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에스엔에스(SNS)상에는 ‘택시’에서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들었던 저마다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들과 함께 ‘공포감’에 공감한다는 여성들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8일 경북 포항북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20대 여성 ㄱ씨는 지난 4일 밤 8시40분께 경북 포항시 흥해읍 케이티엑스(KTX) 포항역 근처에서 택시를 탔다. ㄱ씨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기숙사로 가 달라고 했으나, 택시기사는 다른 대학(한동대) 쪽으로 차를 몰았다. 택시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안 ㄱ씨는 남자친구에게 “택시가 이상한 데로 간다” “엄청 빨리 달린다” “내가 말 걸었는데 무시한다”는 등의 문자를 보냈다. 당시 ㄱ씨와 통화한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말했으나 기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던 ㄱ씨는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렸고, 뒤따라 오던 차에 치여 숨졌다.

ㄱ씨의 동생은 7일 “밝고 건강한 우리 누나의 죽음을 바로잡고 싶습니다”는 제목으로 올린 청와대 청원에서 “주사 맞는 것도 무서워할 정도로 겁이 많은 누나가 그렇게 무서운 선택을 할 정도였으면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해당 청와대 청원은 2만8919명(8일 오후 기준)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여성 공포감에 공감 목소리 쏟아져

포항역에서 기숙사까지 택시로 이동하곤 했던 한동대 졸업생 주아무개(26)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ㄱ씨가 느꼈을 공포감이 이해가 된다고 했다. 주씨는 포항역에서 한동대까지 이동하는 길이 논밭 한복판에 나 있고, 민가나 건물이 보이지 않아 밤이면 “한동대 기숙사 불빛만 보일 만큼” 어둡다고 설명했다. 주씨는 “보통 학교에 들어갈 때는 사람들 모아서 같이 택시를 타기도 했다. 택시 차량번호를 친구한테 메신저로 보내놓고 ‘지금 학교로 들어가는 중’이라고 한 적도 있고, 진짜 깜깜한 밤에는 친구에게 부탁해 미리 나와 달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주씨는 “이건 여성만이 아는 두려움이다. ‘왜 갑자기 그런 무모한 짓을 했냐’는 등 공감을 못 하는 댓글들이 많은데, 내가 만난 택시기사 여럿이 머릿속으로 스쳐 가면서 화가 났다”고 했다.

해당 사건은 원인을 떠나 여러 여성들에게 불안하거나 공포스러웠던 택시 이용 경험을 환기시키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나도 택시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기사가 자꾸 백미러로 뒤를 보면서 히죽거리며 앞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고 전했고, 다른 이용자는 “모의고사를 보러 학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자, 기사가 ‘학교가지 말고 아저씨랑 드라이브 가자”고 했다”고 썼다.

“돈 줄게 나와 자자” “남자친구 있냐”

여성들이 택시에서 느끼는 공포감에는 근거가 있다. 운전대를 쥔 택시기사가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해도, 밀폐된 공간에 있는 여성 승객이 이를 속수무책으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15∼2019년 서울 다산콜센터로 접수된 택시 불친절 민원 3만8687건 가운데 성차별·성희롱 발언은 274건 있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은 베트남인 여성 승객에게 “20만원 줄 테니 나와 자자”는 성희롱 발언을 한 택시기사에 벌금 500만원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북 구미의 한 택시기사가 “불금(불타는 금요일)인데 아가씨 심장도 불타냐. 아가씨 예쁜데 남자친구 있냐”고 하는 등 다수의 승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욕설을 한 혐의(모욕 등)로 구속되기도 했다.

택시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작동하는 ‘젠더 위계’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20년 10월 광주에서는 두 명의 택시기사가 만취한 여성 승객을 주택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 승객을 태운 택시기사는 그룹 통화로 다른 택시기사들에게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이 탔다고 알렸고, 다른 택시기사 두 명은 이 승객을 자신의 집으로 납치한 뒤 성범죄를 저질렀다. 가해 택시기사 3명은 지난해 4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4∼1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찰, 택시기사와의 소통 오해에 무게 두고 수사 중

경찰은 ㄱ씨의 사건이 택시기사와의 소통 오해로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를 들어보면 택시기사가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한동대요?’라고 하는데, 피해자 역시 이를 잘못 듣고 ‘네’라고 대답한 것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에 피해자가 ‘내려달라’고 말한 대목이 한 차례 등장하는데, 택시기사는 못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블랙박스 말고도 (여러 정황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재우 abbado@hani.co.kr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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