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지난달 16일 국회 원내대표실을 예방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인 말 한마디로 정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말이 되나요. 정상화되길 바랍니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은 사회 곳곳에 퍼져나갈 성평등 씨앗들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해주세요!”
15일 여성가족부의 청년 성평등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남긴 말이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지적으로 전면 중단되자, 버터나이프 4기 참가 16개팀이 꾸린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0일부터 시민들의
온라인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5일 만에 1만3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버터나이프크루는 성평등 문화 확산, 젠더갈등 완화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모인 청년팀에 활동 지원을 하는 사업으로 2019년 시작됐다. 참여팀은 멘토링 및 네트워킹 활동 지원과 함께 최대 6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버터나이프크루란 이름에서 ‘버터’는 갓 구운 빵에 덩어리째 발라먹는 버터처럼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확실한 행복을 상징하며, ‘나이프’는 기쁨을 나누어 주는 도구를 뜻한다. 4기 참가팀은 지난 6월30일 출범식까지 마쳤다. 그러다 지난달 4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
페미니즘에 경도된 사업”이라고 지적하자 여가부는 지난달 27일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위탁 운영사 ‘빠띠’에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 빠띠와 4기 참가팀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 여가부의 사업 중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에 비판이 잇따르자 권 원내대표는 또다시 성평등과 페미니즘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자기 돈으로 자기 시간 내서 하면 된다”며 “자신의 이념이 당당하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될 일이다. 왜 이념을 내세워 세금을 받아가려 하느냐”고 했다.
2030 청년들 사이에선 권 원내대표의 발언이 ‘젠더 갈등을 정치에 이용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왔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폐지 반대 서명에 참여한 윤민경(24)씨는 “권 원내대표의 발언이야말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이라며 “권 원내대표는 이 사업이 ‘혈세 낭비’라고 했지만 예술계·체육계·기술계 등 여러 분야에서 해당 사업의 지원을 받아 성평등 가치 실현이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들여다보려 하지 않은 채 속된 말로 ‘여자들이 설쳐대면서 국고를 쓰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되겠냐’는 메시지만 지지층에 전하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트위터에서 서명 참여를 독려하고 나선 전초롱(32)씨는 “사업이 폐지되는 비민주적·비상식적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성 유권자로서)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도 싫은 이의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권 원내대표, 시민 참여 거버넌스 부정하나”
버터나이프크루 지난 기수 참여자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2019년 버터나이프크루 1기 참여자였던 이한(29)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는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정책을 펼치고 지원하는 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문제 삼은 권 원내대표는 전국 수백개쯤은 될 시민 참여 거버넌스를 모두 부정하는 건지, 아니면 청년들을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젠더 갈등이 우려된다면 오히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버터나이프크루 2기에 참여했던 인디밴드 ‘빌리카터’의 보컬 김고양(활동명)씨도 “해당 사업 덕분에 인디음악가 씬 안에서 여성 창작자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나아가 작품으로까지 승화할 수 있었다”며 “이 사업이 예술·문화계의 성평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서명 2만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공대위는 “성평등 사회를 바라는 단체·시민과 연대해 목소리를 모으고,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며 “여가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사업중단 철회 및 부처 내 성평등 사업을 책임있게 지속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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