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왼쪽 둘째) 여성가족부 장관이 18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일방적으로 폐지한다면서 참가한 청년들에겐 사과하지 않고, 도리어 사업에 문제가 있어 중단한다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청년들의 실망감과 박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참가팀에 속한 청년들 사이에서는 김 장관이 장관 임명 뒤 모집부터 출범식까지 아무 말 없다가 불합리한 이유로 뒤늦게 문제 삼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선정된 버터나이프 크루 참가팀 구성원인 ㄱ(22)씨는 19일 <한겨레>에 “여가부 장관이 전날 국회에 출석해 사업 운영 단체인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가 먼저 사업 중단 얘기를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한 것이 너무 기가 막혔다”면서 “본인이 사업을 일반적으로 중단했으면서 빠띠와 참가자들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우린 마치 없어도 되는 존재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한마디에 여가부 지원이 중단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19일 현재 1만4500여명이 참여했다. 공동대책위원회 누리집
버터나이프 크루는 청년이 직접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여가부가 2019년 시작한 사업이다. 올해 4기 크루 모집은 김 장관이 임명된 5월17일 이후인 5월20일 이뤄졌다. 김 장관은 6월30일 4기 크루 출범식에 참석해 “버터나이프 크루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연대와 박애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소통과 포용이라는 행복을 나눠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축사까지 했다.
그런데 여가부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월4일 페이스북에 이 사업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바로 다음 날 사업 재검토를 결정했다. 남성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해당 사업을 중단시킨 김 장관은 전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저희가 (빠띠와) 세 차례 이상 만나 사업 내용을 조금 더 다양한 분야로 해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빠띠가 그건 어렵다며 처음에 그쪽(빠띠)이 사업 중단을 얘기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빠띠는 “이 사업이 원안대로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여가부에) 전달했다”고 반박하며 여가부 직원들과 7월21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여가부 장관, 왜 이렇게 갈라치기를 하는 건가”
김 장관은 또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김 장관의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 결정으로 피해를 입은 청년들에게 사과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ㄱ씨는 “사업 중단으로 피해를 입고 온라인상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청년 참가자들에게는 여가부 장관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6월30일 4기 크루 출범식에 와서 축사를 하며 동기부여했는지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이 사업에 지원한 우리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존재란 말인가”라며 “왜 이렇게 갈라치기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6월16일 국회 원내대표실을 예방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다른 참가자인 ㄴ(32)씨는 “지난 8월5일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여가부 직원들이 본인들이 한 설명을 여가부의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면서 부처를 대표해서 사과한다고 했는데, 정작 여가부 장관은 사업 참가자들에 사과하지 않았다. 무엇이 여가부의 입장인지 모르겠다”며 “4기 크루 출범식에 장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 모두 ‘우리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여가부가 적극 지원해주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 그런데 장관이 이런 식으로 사업에 참가한 청년들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여가부가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으로 청년들이 주도하는 성평등 문화 확산을 지지한다는 그 감각이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됐어요.
그런데 지금 해당 사업이 문제라며 우릴 겨냥하니까, 그게 더 큰 상처예요.”
-4기 버터나이프 크루 참가자 ㄴ씨
4기 참가자들이 결성한 ‘버터나이프 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저녁 성명을 내 “사업 중단 사유는 첫째, 여가부가 ‘성평등’을 제외한 사업 수행을 요구했기 때문이고 둘째, ‘성평등’을 제외하더라도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업 폐지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 사업 폐지 이유를 묻는 크루들에게 아직까지도 납득할만한 근거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 선정된 크루와 운영사를 기만하며 거짓말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여가부가 거짓에 대해 사과하고,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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