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가기관이 기관 내 성폭력 사건을 확인하고도 평균 3주가 지나 여성가족부에 ‘늑장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있기 전 벌어진 사내 성폭력(불법촬영) 사건이 여가부에 보고 되지 않은 것을 두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6일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관 성폭력 사건이) 여가부 장관에게 아주 빠른 시일 내에 통보될 수 있는 시스템과 미통보시 할 수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18일 <한겨레> 요청으로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여성가족부에게 제출받은 ‘국가기관별 성희롱·성폭력 사건 현황’을 보면, 지난해 7월13일부터 올해 8월까지 36개 국가기관이 성희롱·성폭력 41건을 여가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장이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고 여가부에 통보하기까지는 평균 22.8일이 걸렸다. 지난해 7월13일 시행된 성폭력방지법(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장이 해당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가 없으면 ‘지체없이’ 그 사실을 여가부 장관에게 통보하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법 위반 시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기관 인지와 여가부 통보 사이 기간이 3달을 넘긴 국가기관도 3곳이나 됐다. ㄱ기관은 성폭력 사건을 올해 3월17일에 인지하고 123일이 지난 7월18일에 여가부에 보고했다. ㄴ기관은 성폭력 사건 2건을 4월14일과 5월6일에 인지하고 이를 각각 117일, 95일 뒤인 8월9일에 여가부에 보고했다. ㄷ기관은 5월16일에 인지한 사건을 102일 뒤인 8월26일에서야 보고했다.
ㄴ기관처럼 한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중복해 발생한 경우도 3곳 더 있었다. ㄹ기관에서는 3건(지난해 8월, 올해 4월, 5월)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ㅁ기관(지난해 10월, 올해 2월)과 ㅂ기관(2건 모두 올해 2월)에서는 2건의 성폭력이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기관이 여가부에 성폭력 사건을 통보하기까지의 기간은 1~25일이었다.
국가기관의 장은 성폭력을 확인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여가부 장관에게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해야 한다. 여가부는 기한 내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한 국가기관이 28곳, 기한을 넘겨 제출한 기관이 11곳(같은 기관에서 재발방지대책을 2건 이상 제출한 경우 1건이라도 기한을 지나면 포함)이라고 밝혔다.
<한겨레>가 양이원영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각 기관의 재발방지대책을 보면, 기관마다 대책의 수준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청은 재발방지대책에 “고충상담원 안내 공지 및 교육 이수 독려(2022년 8월)”라고 한 줄 제출했는데, 문화재청은 고충상담원의 성별, 직급, 전문교육 이수 여부 등 구체 사항을 모두 제출했다.
여가부는 ‘성희롱·성폭력 사건통보 및 재발방지대책 접수 및 현장점검 규정’에 따라 대책이 미흡하면 서면 점검 및 보완 요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가부는 “점검‧보완 요청 횟수는 별도 집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성희롱·성폭력 관련 시스템이 없어 부처 간 공문을 수기로 집계하는 실정”이라며 “여가부가 국가기관의 성폭력 사건을 늦게 파악하면 피해자의 회복이 더뎌지거나 2차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부처 간 통보·접수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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