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법무부 반대로 이를 철회한 것을 두고, 성폭력 척결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국제인권단체의 지적이 나왔다. ‘비동의 강간죄’란 상대방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일(현지시각) 누리집에 올린 ‘한국, 강간죄 개정 계획 취소’라는 글에서 “한국은 젠더폭력이 만연한 국가”라며 “한국 정부는 젠더폭력 척결 노력의 하나로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의 정의에 포함하고, 모든 피해자가 법적 구제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달 26일 형법 제297조(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의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법무부가 “비동의 간음(강간)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반박하자 9시간 만에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동의’는 강간의 법적 정의의 핵심이어야 한다”며 “한국 형법 297조에 강간을 ‘폭력 또는 협박’에 의한 성관계로 규정된 탓에 재판부가 폭행·협박이 있었는지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판단해, 법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강간 사례 분석 결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조사에서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전체 성폭력 사건의 3분의 2를 넘는 것(71.4%)으로 집계됐다.
휴먼라이츠워치는 한국 정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한국 정부는 성폭력 및 젠더폭력 척결 노력의 하나로 시급히 형법을 개정해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의 정의에 포함하고, 모든 피해자가 지원 서비스와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법무부를 비롯해 한국 국민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경우에도 상대방 동의 없이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강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인권 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단체는 “젠더폭력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 계획이 실현된다면, 한국 여성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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