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4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제 38회 한국여성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중년 여성들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현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등 일자리 피라미드 말단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남성 비정규직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소는 30대 후반부터 여성 비정규직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출산과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고령 여성 앞에 놓인 일자리는 청소, 마트 근무, 음식점 서빙, 가사도우미, 간병인 등 대체로 비정규직이거나 간접고용 형태를 띤다. 또 이런 일자리는 소규모 사업장인 경우가 많고,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성폭력은 더욱 쉽게 발생하고 쉽게 은폐되기도 한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상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하인 사업장은 교육자료 또는 홍보물을 게시하거나 배포하는 방법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성·비정규직·고령이라는 삼각 앵글 속 중년 여성들의 노동이 더 고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인 중고령 여성들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성폭력을 겪더라도 말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하청노동자인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아무개(54)씨는 “고객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일상이지만, 여기 말고는 일을 못 구할 것 같아 문제제기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방역노동자로 일한 박아무개(48)씨도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수 있어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년 여성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의 고용과 관련해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성고충상담소 운영, 사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매뉴얼 정비 등을 통해 이들에게 ‘회사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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