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조건부 승인한 먹는 임신중지약 ‘메피고 팩’. 라인파마 제공
국내에선 도입이 무산된 ‘먹는 임신중지약’이 일본에서 조건부 승인됐다. 한국에서는 2019년 이후 ‘낙태죄’ 처벌 효력이 사라졌지만,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여전히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는 최근 일본 후생노동성이 먹는 임신중지약 ‘메피고 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임신중지약은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승인된 뒤 전 세계 80여개 나라에서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일본에서는 뒤늦게 승인이 내려진 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승인한 ‘메피고 팩’은 임신을 지속시키는 황체호르몬 작용을 억제하는 미페프리스톤과 자궁 수축제인 미소프리스톨로 구성되어 있다. 미페프리스톤 1정을 복용한 뒤 36시간∼49시간 뒤 상태에 따라 미소프리스톨 4정을 복용하는 방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입원 또는 병원 내 대기를 임신중지약 처방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에 앞장선 시민단체 대표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토모미 사이키코는 엔에이치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보다 30년 이상 늦게 임신중지약 승인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고액의 비용이나 일률적인 입원 관리로 인해 당사자가 약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낙태죄 폐지 2주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뒤늦게 임신중지약을 승인한 일본보다도 더 뒤처진 상황이다. 앞서 현대악품은 2021년 식품의약안전처에 ‘미프지미소정’(미프진)이라는 임신중지약의 품목허가를 신청한 바 있다. 식약처는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1년5개월 동안 승인을 미뤘고, 현대약품이 지난해 12월 품목허가 신청을 자진 철회하면서 임신중지약의 국내 도입은 결국 무산됐다.
그러자 우리 정부가 무책임하게 승인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임신중지약은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이미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임신중지약이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음성적인 판매가 횡행하고 있다.
임신중지약 도입이 무산된 지난해 12월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는 “식약처가 유산유도제에 대해 보여준 태업과 방관은 여성건강에 대한 무책임함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이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는 주장을 하려면 현재 유산유도제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접근 방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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