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시각장애인인 이가희(30)씨는 매장에서 생리대를 살 때마다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다. 생리대에 점자 표시가 없어 생리대 종류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인지 중형·소형인지, 날개형인지 일반형인지 등 생리대의 종류가 다양한데, 이씨 혼자서는 이런 정보를 알 수가 없다. 이씨는 “생리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매장 직원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쉽지 않다”며 “매장에 남성 직원이 있을 땐 대충 아무거나 사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집에서 생리대를 착용할 때도 구분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이씨는 “제품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뭔지 확인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생리대는 필수품이지만, 시각장애 여성들은 ‘안전하고 건강한 월경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점자 표시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시중에 유통되는 생리대 31종을 구매해 점자 표시 여부를 확인해본 결과 점자가 표시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내년 7월 의약품과 의약외품에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 변환 코드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생리대가 점자 표시 의무화 대상에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약사법은 타이레놀 등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만 점자 의무 표기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외 다른 의약품이나 생리대와 같은 의약외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처장이 정해야 표기 대상이 된다. 식약처는 이달 중 총리령이 정하는 기준을 만들어 점자 표기 방법을 구체화하고, 올 하반기 점자 표기 의무화 대상이 되는 구체적인 품목을 정할 예정이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생리대는 여성이 매월 일주일 동안 사용하는 생필품인 만큼 정보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여성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안전상비의약품만큼 생리대도 중요하기 때문에 식약처가 의지를 갖고 점자 표시를 추진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점자 표시 의무화 제품에 생리대가 포함되는지에 대해 “장애인 단체, 협회, 학계, 업체 등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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