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기 전 그를 인터뷰한 <워싱턴 포스트>의 미셸 예희 리 기자가 자신이 받은 디엠 메시지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트위터 캡처
#1.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 4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 발언이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의 주어가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이라며, 워싱턴 포스트가 잘못된 번역(오역)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미셸 예희 리 기자는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직접 공개하며, 잘못된 번역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역 논란’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다이렉트 메시지(DM) 일부를 공개했는데, 메시지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경멸적인 표현이 적혀 있었다.
#2.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022년 3∼6월 비대위원장 재임 시절 ‘입시 비리’ 의혹으로 논란을 초래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또 성희롱 발언을 한 같은 당 최강욱 의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지금도 그의 에스엔에스에는 그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댓글엔 박 전 위원장에 대해 ‘얘’ ‘야’ ‘너’와 같은 반말 지칭이 많았다.
여성 정치인과 언론인이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폭력을 경험하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정치 참여와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여성 정치인과 언론인을 향한 폭력이 궁극적으로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8일 오후 ‘온라인 폭력과 여성의 공적 참여’를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여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온라인 공간이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올카 유라시 영국 오픈유니버시티 법학부 부교수는 “여성들은 온라인상의 폭력을 상당히 흔하게 경험한다”며 “특히 (정치·언론계에서) 공적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공인이라는 이유로 오프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 영역에서도 상당한 폭력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유라시 교수는 2018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여성에 대한 폭력, 그것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언급하며 “5년 전 보고서 내용와 비교했을 때 현재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여성 인권 옹호자와 언론인, 정치인들은 (성희롱, ‘신상 털기’, 온라인 스토킹, 비동의 사진 유포 등과 같은) 온라인 폭력의 표적이 되고,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를 당하기도 한다”며 “이런 위협은 (피해자의) 가명 사용, 온라인 계정 비활성화, 영구 삭제 또는 퇴사 등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이런 여성 대상 온라인 폭력 때문에 정치 참여를 스스로 꺼리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며 “여성의 동등한 정치적 참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윤지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협력센터장도 여성 대상 온라인 폭력이 심해지면서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19년 (20대 국회 원내 정당 6곳과 원외 정당 2곳의) 19∼39살 청년 당원 9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여성 당원들은 출마를 고려할 때 남성과는 다르게 온·오프라인상의 ‘안전’ 위협을 큰 유해요인으로 느끼고 있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 국회의원 숫자는 더 적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우리나라의 여성 정치 참여율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 국제의원연맹(IPU)과 유엔여성기구가 올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의회가 있는 세계 18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1월1일 기준 전세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평균 26.5%였다. 한국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1%(121위)로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친다. 여성 장관 비율 부문에서도 한국은 세계 평균인 22.8%보다도 낮은 16.7%(111위)에 불과했다.
신우열 전남대 조교수(신문방송학과)는 이날 여성 기자 20여명을 심층 연구한 결과를 일부 소개했다. 여성 기자들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높고, 직업 특성상 말과 글을 계속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 괴롭힘과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공동 바이라인에 남성 기자가 포함돼 있어도 폭력적인 내용의 이메일은 여성 기자에게 향한다”며 “특히 (가해자들이) 여성 기자들을 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여성 기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신상이 ‘박제’된 뒤로, 길을 걷다가 그를 알아본 남성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일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온라인 폭력은 여성 기자들에게 심리·정서적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업무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 교수는 “여성 혐오성 메시지, 이메일, 댓글, 디엠을 받거나, 좌표 찍기 등 온라인 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기자들은 공격을 덜 받을 만한 기사를 쓰거나 특정 취재 부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직업 수행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가 강한 언론사에 속한 여성 기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자신이 입은 피해를 감내하고 있다”며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유형에 속하는 한국 언론사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민정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많은 기자들이 언론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는 동기가 ‘좋은 기사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윤리적 동기인데, 온라인 폭력은 이런 동기를 저하시킨다”며 “결국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을 온라인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기자 개인뿐만 아니라 독자를 보호하는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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