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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고용평등상담실’ 없었더라면”…여성 노동자들, 예산 삭감 반발

등록 2023-10-31 17:28수정 2023-10-31 21:59

고용노동부,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방침에
노동자들, 국회 토론회 나와 폐지 막아달라 호소
3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3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ㄱ씨는 지난해 회사 회식 자리에서 대표이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대표이사를 경찰에 신고한 ㄱ씨는 법적 대응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다. ㄱ씨는 법률 자문이나 노무 상담을 받을 곳을 찾던 중 고용평등상담실을 운영하는 수원여성노동자회를 알게 돼, 무료 법률자문과 정신적 피해 상담 지원을 받았다. ㄱ씨는 “(성추행 등의) 트라우마로 재기를 꿈꾸지 못했는데 노동자회 선생님들의 안부 전화와 관리 덕에 다시 일자리를 구해 건강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의 재기를 도왔던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폐지될 처지에 몰렸다. 고용노동부가 내년부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고 8개 지방고용노동관서가 관련 업무를 직접 수행하도록 하면서, 내년 예산을 절반 가량 삭감해 편성한 데 따른 것이다.

ㄱ씨는 31일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가 국회에서 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의 자료집에서 “사회를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고용평등상담실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사업은 일터에서 성차별·성폭력·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겪은 여성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노동부가 지원하는 민간 보조사업이다. 2000년 지방고용노동관서와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동시에 운영됐다가 2005년부터는 정부 지원을 받아 여성·노동단체가 운영해왔다. 2000~2022년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지원한 피해 건수는 총 16만8070건으로, 연평균 7640건 꼴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ㄱ씨 뿐만 아니라 고용평등상담실의 지원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 노동자들의 호소가 전해졌다. 1년 동안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겪다가 결국 퇴사한 ㄴ씨도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상담지원을 해준 덕분에 직장 내 괴롭힘 고충 진정을 낼 수 있었다”며 “일하는 여성들이 사는 지역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고용평등상담실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부 쪽에선 지방고용노동관서가 상담업무를 맡게 되면 사건조사·감독 업무와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 1인당 업무량이 늘어나게 되는데, 고용평등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방노동청이 단독으로 고용평등 상담을 수행한 1999년의 상담 건수는 325에 불과했으나, 고용평등상담실이 설치된 2000년엔 5023건, 2022년엔 1만3천건을 넘었다”며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향상돼 (상담 신청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로감독관 1인당 업무량이 늘게되는데 고용 평등 업무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은 정보 제공뿐 아니라 사내 대응, 고용노동부 진정, 노동위 구제신청, 민·형사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사안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취하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그동안 고용평등상담실은 피해자 1명당 수십 차례 상담전화를 하고 방문을 하는 등 피해자 지원을 해왔는데, 정부의 방침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행정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담이 이뤄질 경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기도 한다”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은 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와 관련 “(노동부는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할 게 아니라) 갈수록 증가하는 고용상의 차별, 성희롱·성폭력, 일·가정 양립에 관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확실한 권한을 확보하고, 고용평등 상담 제도를 보다 실효성 있게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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