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대한민국 엄마들이 이땅의 평화 만들자

등록 2007-05-08 18:33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행여 개성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따라나선 당일치기 나무심기 여행. 개성공단이 내려다보이는 산 언덕바지에 2인 1조로 어린 배나무 아홉 그루씩을 심는다. 온 나라에서 모여든 초딩부터 팔순 노부부까지, 남녀노소 200여 명이 모인 자리. 구덩이를 30㎝ 깊이로 파라는 지시에 따라 1. 간격을 지키려 애쓰며 서툰 삽질을 시작한다. 80㎝ 가량 되는 묘목을 구덩이에 넣고 흙을 덮으려니 촉촉한 갈색 흙이 손가락에 엉킨다.

앗, 이 느낌! 금강산의 잘생긴 봉우리를 볼 때보다 뜨거운 이 느낌은 웬 거지? 그냥 스치며 지나가던 계곡의 절경보다, 우람한 랜드마크로 가득 찬 평양 시내 관광보다 보잘것없는 산 언덕에 주저앉아 흙 만지는 이 순간이 내게 북녘을 진하게 실감케 하니 말이다.

나무심기보다 더 신나는 건 개성냉면이 곁들여진 점심. 북쪽 안내원들이 우리에게 ‘원샷’을 외치며 들쭉 와인을 같이 들이켠다. 낮술 한잔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서로 호구조사까지 감행한다. 손에 손 잡고 ‘고향의 봄’을 합창하는 상투적 마무리마저 즐겁다. 모국어로 같이 웃고 떠들며 밥 먹는 자리에 국경이 존재한다는 건 오히려 어색하다. 그래, 앞으로 올 통일 시대, 남과 북의 공동 국보 1호는 당연 우리들의 모국어가 되어야 하리!

한 봉제업체 견학 뒤 돌아오는 버스 속,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봉제업 생산 라인에서 70년대 청계천 피복 노동의 기억을 되살린 50대가 있는가 하면, 개성공단의 규모와 다이내믹한 에너지에 압도당했다는 소감도 있다. 청주의 지게차 업계 종사자는 북과의 교류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말씀이고, 전주 교사 다섯 분은 오늘의 이 느낌을 어떻게 정리해 학생들에게 전달할까 고심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우리는 남과 북의 문제를 ‘6자 회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에게 너무 맡겨 놓은 것 아닐까?

‘그냥 가정주부’들과 ‘일개 시민’들, ‘고지서 내기에 여념 없는 민간인’들이 북에 나무 심고 숲 가꾸는 일이 국제관계의 역학에 미치는 힘을 과소평가하면서 말이다.

평화란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 더구나 아들을 전쟁의 도구로 쓰고 싶지 않은 이 땅의 엄마들이라면 평화 만들기야말로 최우선순위 관심사일 터. 천하무적 대한민국 엄마들이 팔 걷고 나서 북에 나무를 심고, 비무장지대에 남북 청소년 캠프를 열고 북의 청소년들을 2박 3일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초대한다면 어떨까?


전문가들의 무성한 통일논의보다 평화를 더 평화적으로 실천하는 길일 것 같다.

칼럼니스트/behappym@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