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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아싸! 이 땅의 미얀마 아기와 통했구나

등록 2007-03-27 18:39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민수탕은 태어난 지 넉 달 된 미얀마 아기다. 엄마 이이쉐는 아기를 돌보느라 봉제공장 일을 못 나간다. 벽에 곰팡이 핀 지하 월세방에 살지만 엄마 젖을 먹는 민수탕의 볼살은 통통하게 올랐다. 아기 카이닝도 넉 달 된 딸 아이. 왼손 마디에 혈액점이라는 붉은 점이 송송 생겨 걱정거리다. 3달 후엔 고향 베트남으로 보내 외할머니 손에 맡기고 엄마는 다시 미싱사로 일할 생각. 벌써부터 떠나보낼 게 가슴 아프다. 아이 엄마들은 친정 엄마 없이 씩씩하게 첫아기를 낳았다.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나 같은 겁쟁이는 엄두도 못 낼 쾌거. 게다가 언어 장벽까지 딛고 첫 아이를 낳은 미얀마 엄마 이이쉐와 베트남 엄마 마이욘. 둘 다, 첫 아기를 낳은 엄마만이 누리는 은밀한 기쁨에 꽃같이 웃는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조금 부드럽게 말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걸리면 끝장이다. 매사에 조심조심, 초긴장 상태로 살아야 한다. 출입국 관리소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그건 아기나 엄마가 아플 때. 의료보험이 안 되니 병원 한번 가게 되면 거의 재앙이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으려면 몇 달 모은 돈을 몽땅 털어야 한다. 아기가 아파 응급실에 갔다가 서너 가지 검사비로 40만원을 날린 경우도 있다. 외국인의료공제조합이 있긴 하지만 영수증을 모아 사후에 일정 부분 환급받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일단 현금을 쥐고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다.

모성보호 자원활동가인 계양씨를 따라 이이쉐와 마이욘의 집을 찾아간 날. 아기 엄마들은 반갑게 우릴 맞아준다. 거의 친정 이모 대우다. 계양씨는 이들이 임신했을 때부터 정기 검진에 동행했다. 대개 자기네 산후조리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라, 굳이 미역국 끓이는 법을 교육하지는 않는다. 출산 직후엔 매주 한 두번 들여다봐야 안심이고 산후 두 달이 지나면 한달에 한번 정도 연락하고 찾아가게 된다. 보건소의 무료 예방접종을 빼먹지 않도록 에스코트하는 것도 모성보호 도우미들의 일. 아기 아빠에게 아내 돌보기 훈련을 시키고, 한국생활 전반에 걸친 상담 가이드 구실도 한다.

같이 간 형미씨가 아기를 안고 ‘섬집 아기’를 부르기 시작한다. 미얀마 아기 민수탕이 옹알이로 맞장구를 쳐온다. 아싸! 커뮤니케이션, 성공이다. 쥐면 부서질 듯 약하고 어린 것들이 이 땅에 왔다. 지구 행성의 귀한 손님들이기도 한 아시아의 아기들. 우리는 마땅히 예를 갖추어 어린 친구들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과의 인연으로 이 땅에 태어난 아기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우리 아기들이다.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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