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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친구같은 딸, 친구같은 엄마 ‘아~ 행복해’

등록 2007-01-16 19:02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꼬막은 데쳐서 까먹는 게 제일 맛있다. 꼬막 삶은 냄비를 둘러싸고 식구들이 손톱으로 꼬막을 벌려 까먹는 재미라니! 일요일 아침, 꼬막을 삶고 생굴 한 접시에 초고추장을 곁들였다. 다들 게으르게 일어난 터라 점심을 겸한 아침 식탁이 꼬막 파티. 에라,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따보자. 작은아이는 꼬막을 몇 개 까먹더니 동네 마실을 가버렸다. 남은 건 딸과 나. 둘이서 와인 한 병을 바닥냈다.

일년 휴학한 뒤 복학한 딸은 지난가을 수업을 따라가느라 내내 헉헉거렸다. 안 하던 공부여서인지 저녁마다 머리털을 뽑아가며 과제물에 코를 박았다. 모처럼 마주 앉은 모녀의 근황 브리핑. 나는 몇 달간 매주 하루씩 나간 이주여성 관련 단체에 대해 떠들어댄다.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고 서류 입력이나 메일 발송 같은 자잘한 업무 보조가 전부. 그래도 내겐 새로운 세계였다. 딸은 열심히 들어준다. 그러곤 자원 활동의 영역을 조금씩 공격적으로 넓히라는 제안을 한다. 기특하다. 이번엔 딸 차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스테이크요리집의 인적 구성과 각 구성원들의 캐릭터 분석이다. 또 프랜차이즈인 레스토랑의 작동 기제를 식재료 수급부터 스태프간 업무 분담 내역까지 설명해 준다. 경영학 전공, 그것도 인사관리에 관심 많은 학생의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개인평까지 곁들이니 혼자 듣기 아깝다.

내 직장생활 때문에 딸은 외할머니부터 시작해 여러 도우미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거쳐 자랐다. 독립심은 강한 편. 학업보다는 세상 구경에 관심이 많다. 휴학 중 반년간 이집트,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부와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을 혼자 쏘다닌 적도 있었다. 나 홀로 여행의 고달픔이 그를 성숙시켰을 것 같다. 〈개그콘서트〉의 “인생, 뭐 있어?”라는 ‘고무줄 바지’ 안일권의 춤에 열광하고 현철, 송대관과 고속도로 트로트 메들리의 왕팬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흘러간 노래들의 보물창고인 〈가요무대〉. ‘7080 올드팝’의 빼어난 서정성을 평가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딸이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이 될까? “큰돈을 벌어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 한다. 무엇이 된들 어떠리? 엄마로서 딸의 미래를 지켜보는 기쁨을 누리게 될 터인데. 세살 때 “엄마, 발 속에서 별이 반짝거려요”라고 발저림을 표현하던 꼬마 시인. 그 영혼이 어떻게 내 몸 속에 들어와 박혔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새 친구가 된 딸과 마주 앉아 와인을 나누는 순간의 행복, 더 무엇을 바라랴? 내 잔이 이미 넘치는 것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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