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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또 인연을 떠나보내며 날 위로해본다

등록 2006-12-26 18:56수정 2006-12-26 18:59

2050 여성살이 /

연말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하느라 바쁘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나도 올 한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경험했고, 이사를 했으며,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올랐던 일들이 떠오른다. 하루하루 노쇠해지는 육신이 세월의 흔적이구나, 괜히 주책도 떨어본다.

“인생이 뭐 별거 있나” 싶을 만큼 소소한 일들을 곱씹어보면서 역시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람이다 싶다. 묵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새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진동이 사실은 사건들인 것이다. 특히나 올해는 오랜 인연을 떠나보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오롯이 견뎌냈다. 묵은 세월을 정리하는 일이 늘 그렇듯, 사랑과 미움과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인 감정의 용광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법이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누군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감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로 인해 그와 나누어가졌던 마음들을 서둘러 다시 주워 담으려 했던 것, 새로운 인연으로 묵은 인연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으며 감정의 흔적들을 모른 척했던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하기는커녕 내가 가야 하는 길을 되돌아가게 했다.

하나의 인연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인생의 사건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야 그것을 곱씹으면서 웃음의 흔적을 즐기면 되겠지만, 슬프고 힘든 일을 겪었을 때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것도 아닌, 스스로를 위한 자신의 애도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 질책도 하지 않고, 잘 했다고 섣불리 칭찬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만져주고 껴안아주는 것이 애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줄 모른다. 아니, 스스로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자신을 힘든 시간들 속에 방치해둔다.

비로소 나 자신을 애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슬픔의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참았던 눈물이 흘렀고 진심으로 슬펐으며 인연과 사건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과정을 견디어낸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어쨌건, 내가 사랑했고 내가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이 내 영혼의 성숙을 위해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올해 나를 스쳐갔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그동안 이 지면을 통해 만난 수많은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제 또 하나의 인연을 떠나보낸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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