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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초딩 친구’ 애련이의 위대한 창조력

등록 2006-12-19 18:20

2050 여성살이 /

12월 첫 수요일, 역삼동 천주교성당에서 ‘초딩 동창’ 김애련이 전례극을 공연했다. 미사 도중 노래를 곁들인 30분짜리 미니 뮤지컬의 제목은 〈목동들의 경배〉. 출연진 10여명은 한 평생교육원에서 가을 학기를 수강한 그의 제자들로 주로 여성 신자들이었다. 로마의 한 변방, 먹고살기 팍팍하고 희망 없는 소수 민족의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에 흥분한 목동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구성한 이 전례극은 프랑스 극작가 아르눌 그레방의 작품. 애련은 연출부터 번역, 각색에 ‘목동 2’ 배역 출연까지 멀티플레이어로 뛰었다. 중년 여성 둘을 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로 기용한 캐스팅은 신선했다. 무대를 주름잡는 젊은 목동들과 대비되어 중년 여성 천사들은 안정감 있는 몸매와 대사로 균형을 조성해 객석의 40여명 동료 신자들을 즐겁게 한다.

어릴 적 애련은 총명하고 노래 잘하는 아이였다. 대학원 시절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 후, 딸 둘을 낳고 계속된 공부. 전공은 종교극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대학과 평생교육원에서 프랑스 연극과 중세 종교극을 강의했다. 출발은 강단 이론가였지만 곧 미사 봉헌 중 공연되는 전례극 연출을 맡아 뛰기 시작했다.

무대 위 노래하는 애련은 행복해 보인다. 비전문 무대 인력으로 꾸민 저예산 연극을 지향하는 이 소박한 연출가가 연극의 치유 능력에 대해 말할 때 우린 친구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리허설 과정 출연진과 스태프 사이의 유대, 그리고 공연 중 객석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말할 때 애련의 얼굴은 빛난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의 신앙과 재능의 절묘한 융합에 친구들은 기꺼이 기립 박수부대가 된다. 이번 시즌 애련의 작품은 여러 병원, 양로원, 성당과 교도소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그는 기꺼이 응한다. 어려운 부분은 15명에 이르는 출연진과 스태프의 스케줄을 맞추는 일. 그리고 돈. 거의 모든 비용은 시간 강사 애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번에 그는 얼마 전 받은 번역료 인세 125만원을 몽땅 털어 소품과 자잘한 비용을 충당했다. 게다가 연극과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점심까지 대접했다. 그리고 종달새처럼 즐거운 얼굴! 그의 자매들은 김장을 담가 보내고 밑반찬을 보내준다. 딸들은 집안 살림의 공백을 메우며 뜨거운 지지를 표명한다. 무심하던 남편은 가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공연장에 나타난다. 몇몇 후배와 제자들은 자원 활동으로 조명과 음악을 담당한다. 객석의 칭찬 한마디는 애련에게 보약 한 첩. 이제 그는 가톨릭 교구내 유일한 전례극 연출가로 인정받는다. 애련의 아름다운 행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나는 모른다. 생활비를 아끼고 시간강사 월급을 털어넣는 출혈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애련은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잘 살면 성공, 내일 또 다시 태양은 떠오를 테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력은 폐경기 여성의 열정으로부터 나온다. 여성은 30살에 형성되고 40살에 변화하며 50살에 완성된다.”-마거릿 미드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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