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빼빼로 받은 사람과 안(못)받은 사람

등록 2006-11-14 19:00수정 2006-11-14 19:03

2050 여성살이 /

‘빼빼로 데이’ 광풍이 지나가고 나니 세상의 인간이 두 종류로 나뉜다. 빼빼로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말이다. 내 친구들 중 받지 못한 이는 자기는 원래부터 그런 상술을 싫어했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빼빼로를 주지 말 것을 당부했으니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안 받은 것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짝짓기 열풍과 연애중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소비행태를 사람들은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누가누가 줬는지를 열거하는 빼빼로 받은 친구는, 안(못)받은 친구의 흥분을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연인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니 연애중독과 연결하는 것은 억지이고, ‘그깟 빼빼로’에 왜 그리 열을 내냐며 타박한다.

둘의 논쟁은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안(못)받은 친구가 ‘빼빼로 데이’에 관한 소견을 이야기하면 그건 바로 ‘빼빼로도 못 받는 사람의 변명’이 되어 그가 싱글인 이유로 결론 맺어진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빼빼로를 받은 친구는 삶의 이벤트를 즐길 줄 아는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어 ‘사랑받는 자’의 권력을 누린다. 자기 입으로 ‘빼빼로 데이’를 싫어한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오히려 빼빼로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고, ‘빼빼로 데이’의 수혜자인 친구는 그깟 빼빼로에 목숨 걸지 않는 ‘쿨’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이 아이러니 때문에, 안(못)받은 친구는 결국 억울병으로 자폭했다.

‘빼빼로 데이’니, ‘밸런타인 데이’니, 데이 열풍이 ‘광풍’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을 싫어할 자유와 달갑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즐기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옹호할 자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데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빼빼로나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틀로 판단하고 규정한다. 그깟 이벤트 가지고 뭘 그리 열을 내냐는 반응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받은 친구의 “그깟 빼빼로” 발언이 다른 무엇보다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 자기가 누리는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면서 스스로는 높은 데로 임하고 상대방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으로 강등시키는 얄미운 전략인 것이다. 만약 그 친구가 “나는 빼빼로를 받아서 기분 좋다. 즐거움을 얻는 방식이 너와 다르다”고 말했다면, 안(못)받은 친구가 그리 억울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이 즐겁지 않은 그의 감성은 어쨌건 존중받는 것이니 말이다.

열풍이 광풍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풍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져야 한다. 상술을 자기 방식으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고, 빼빼로와 초콜릿을 매개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겠으나,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억울병에 걸리는 분위기는 부디 다음 번 ‘데이’들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