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씨름대회 우승을 노리는 10대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적 감수성의 주인공이 거친 씨름판에서 살아남아 우여곡절 끝에 3천만 원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는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서 그가 여성이 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해지겠다. 최근 대법원이 발표한 ‘성전환자의 허가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말이다.
먼저 그는 스무 살까지 쥐죽은 듯이 살다가, 성전환 수술이 병역 기피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병역 기피의 혐의만이 아니다. ‘범죄 은폐의 불순한 목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과 조회나 신용정보 조회 등 불쾌한 일들도 참아내야 한다. 스무 살 되기 전에도 성전환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바뀐 성별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성별 정정의 절차를 밟지 않는 이상 그는 ‘(원하는 성정체성대로 권리를 행사하는)국민’이 될 수 없다. 성전환자 중, 스무 살 이상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서 혼인한 사실이 없고 자녀도 없는 사람만이 ‘국민됨’의 자격을 갖게 된다.
이러한 성전환자의 허가기준은 성적 소수자의 삶과 권리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성전환이 성별의 ‘정상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심각한 편견을 전제로 한 폭력적인 처사이다. 군대 가기 싫어 다리 부러뜨리고 손가락 잘랐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죽을 수도 있다”는 각서까지 쓰는 위험한 수술을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설령 그런 사례가 있다손 치더라도, 위법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만 놓고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위헌이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특정한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누구나’ 수행해야 한다는 병역의 의무를 들이대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뿐만 아니다. 생물학적인 성과 자기 정체성의 분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함이, 결혼 이력과 자녀 유무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어느 날 아빠가 여자가 되고, 엄마가 남자가 되는 상황이 자녀들에게 충격일 수 있겠지만, 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생물학적인 성이 삶의 질곡이 된다는 사실을 교육시켜야 하는 공동체의 의무이지, 한 인간에게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별 정정 신청이 늘어난다고 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혼란스러워지고 ‘국민’의 조건이 약화된다고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오버다. 검증되지 않은 사회적 위협감만을 가지고 ‘국민의 조건’을 역설하면서 오히려 이들을 ‘국민’에 소외시키는 호들갑을 떨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국가의 병역 정책과 인구 관리 보다 중요한 것이 행복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다. 성전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 행복한 이들이 늘어간다면, 이는 공동체 전체로서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이 단순한 사실로부터 해법을 찾아가자는 말이다.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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