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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친구야, ‘밥상 대기조’ 그만하렴

등록 2006-10-31 17:39

2050 여성살이 /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씩 기울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로 회포를 푸는 동창회, 좀 이른 시간인데도 귀가를 서두르는 친구들의 이유는 ‘식구들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식구들 식사 준비 때문에 그 좋은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호감이다. 바로 전까지 남편의 출세와 아이들의 성적을 자랑했던 친구는 “아직도 나 없으면 밥도 못 차려 먹는다”며 행여 식구들의 저녁밥이 늦을까 총총 자리를 뜬다. 회사일 잘하고 공부 잘하는 것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것이고, 손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 큰 인간들이 제 밥 못 챙겨 먹는 것은 무능력한 것이 아닌가? 그보다, 왜 여자들은 가족들의 무능력을 너무나 기꺼이, 혹은 갈등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갑자기 뒷골이 땅겨온다.

주부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집 밖의 다른 일을 할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밥’이다. ‘밥해주는 사람’의 역할이란 단순히 밥을 하고 식사를 차려주는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식구들을 위해 늘 대기상태로 있어야 하고, 피곤하다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뭔가 맛깔스런 반찬거리를 해주려고 애써야 한다. 심지어 가족들의 정서 상태를 살펴 화목한 식탁 분위기를 만드는 감정노동까지 감내해야 된다. 어쩌다 한번 힘들다고 짜증냈다가는, ‘그깟 밥 차려주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든 일이냐, 무뚝뚝하고 화난 얼굴 보니 밥맛까지 떨어진다며 타박이나 받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면, 그 잘나고 똑똑하다는 인간들은 왜 제 손으로 밥을 차려 먹을 생각을 안하는지, 그 쉬운 밥도 못 차려 먹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의 상처를 왜 안받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주부들이 ‘밥 해주는 사람’으로서 위세를 떨 필요가 있다. 가족들이 못하는 일,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서의 중요성을 스스로가 알자는 말이다. 외출하고 오느라 저녁밥이 좀 늦어졌다고, 간혹 밥을 차려주지 못했다고 이를 ‘죄송한 일’로 여긴다면 그 숱한 세월 밥 차려주었던 자기의 노동을 스스로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닐는지. 주부가 해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이 주부의 스케줄과 심리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야 되는 일이므로, 언제든 주부의 돌발상황은 배려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우리들의 사회적 ‘잘남’은 주부들의 숱한 노동을 갉아먹으며 만들어진다는 것을 더는 모르는 척해서는 안된다. 밥도 못 차려 먹는 무능력한 인간들로서 한없이 겸손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든지, 아니면 그 쉬운 일 혼자 감당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하자는 말 되겠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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