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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선생님은 자위하세요?” 라는 질문 어떻게…

등록 2006-09-26 19:14수정 2006-09-26 19:18

2050 여성살이 / 적당히 회피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성교육 강사인 내 친구의 밥줄이 위태롭다. 얼마 전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 시간에 튀어나온 ‘자위’ 발언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위 해보셨어요?” 호기심 만발의 아이들에게 “그럼요, 여러분만한 나이 때 자위하기 시작해서 요즘도 생각날 때면 한답니다.” 성교육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해 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전했던 모양이고, 다음날부터 그 학교 교무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음은 물론이다. 결국 내 친구는 ‘교육상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강사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으며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다.

‘나 자위해요’라고, 꼭 그렇게 광고할 필요까지 있었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다가 비교육적인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성교육론 강의를 듣게 되었다. 자위가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너무 몰두하면 정서상 좋지 않을 수 있고 그보다는 다른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소위 성교육 매뉴얼이다. 그런데 자위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맺을라치면, 아이들은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선생님은 하세요?”라고 묻는단다. 자위행위가 성적으로 자연스럽고 해로운 일이 아니라면, 왜 그것을 밝히는 어른이 한명도 없는 것일까? 자위보다는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하라는 말은 결국 그 행위가 덜 생산적이라는 말인가? 아이들의 의문은 끝이 없지만,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대답은 아쉽게도 교육 현장에서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성교육 시간에 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 내 친구의 생각이다.

성적인 욕망과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되고, 특정한 성적 ‘실천’들이 윤리적으로 섣불리 판단되는 분위기는 성교육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나쁘지 않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태도를 통해 아이들은 성적인 이야기와 행위가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배우며, 수업시간에 주고받기에 적절한 이야기와 그렇지 못한 이야기들을 구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교육 현장’에서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또래집단의 제한된 경험과 폭력적인 포르노를 통해 배출되고 학습된다. 성교육의 실패다.

성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어떤 성적 주체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어른들도 해본 적이 없으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성적 주체를 길러내는 일이 우리사회에서 그럴듯하게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자기의 성적 욕망을 성찰하고 그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는 교육은 결국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조심스럽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위 하세요?”라는, 단순하지만 노골적인 질문을 적당히 회피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 ‘나의 자위와 자위하지 않음’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성’에 대한 성찰적 시각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정녕 불가능한 일일는지, 친구의 퇴출이 유감스럽기만 하다.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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