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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설거지 잘한다’ 자랑하는 간큰 남자들

등록 2006-12-12 18:13

2050 여성살이 /

남성 중에서는 자기가 설거지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열심히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데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이 많이 모인 자리, 특히 ‘기 센’ 여자들이 우르르 몰린 자리에서 곧잘 그런 이야기를 해댄다. 분위기 파악하면서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할 수 있고, 여자를 배려하는 가정적인 남자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의도도 ‘근육질 자랑하는 남자’보다 귀여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랑은 한두 번으로 그치기를 바란다. 더 하면 할수록 품위도 떨어지고 진정성도 의심받는다.

며칠 전 여성 모임에 청일점으로 참석한 한 남성은 열심히 설거지하는 자신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다가 한순간에 ‘바보’가 된 경우였다. 시작부터 그는 여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쌓인 설거지를 참다 못해 고무장갑을 꼈다는데, 자리에 모인 여자들은 그가 아무 잔소리 없이 친절한 표정으로 싱크대 앞에 섰을까를 의심했다. 게다가 설거지에 열중한 나머지 자기가 닦은 접시 밑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났으며, 그렇게 모든 그릇에 광을 내느라고 아내는 10분 걸릴 설거지를 자기는 1시간씩이나 걸렸단다.

마침내 그가 내린 결론은, 남자들이 집안일을 안 해서 그렇지 일단 시작만 하면 설거지든 뭐든 여자들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데 딴죽 걸 마음은 정말 없었지만, 그 자리에 모인 여자들 모두 혀를 차며 공감한 진실이 있다. 그 허세야말로, 매일 그 일을 하는 사람과 어쩌다 한번 하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는 것을 자랑하던 그 남자는 결국 자기는 어쩌다 한번 해본 설거지로 ‘가정적인 남자’라는 칭찬을 거저 받으려는 속셈을 드러낸 셈이 됐다. 하면 본전이고 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는 집안일, 그것을 매일 하는 사람이라면 1시간 동안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바쳐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갖는 그 ‘열성’이 되레 짜증났을지도 모른다.

설거지는 설거지일 뿐이다. 남성들이 남녀평등을 실천하는지의 여부로 ‘설거지’를 이야기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설거지를 열심히 끝냈다고 해서 집안일에서 설거지가 차지하는 위치가 갑자기 높아진다거나, 설거지를 열심히 치러낸 사람이 갑자기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가사노동이며 일상이다.

전업주부라면 매일 설거지해주는 남편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쩌다 한번 하는 설거지라도 허세부리지 말고 얌전히, 매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후닥닥 해치워주길 바란다. 맞벌이 부부라면? 당연히 집안일을 나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30%를 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단다.

부부 모두 가정경제에 기여하지만 가사에는 여전히 기여하지 않는 남자들이 언제까지 이를 모른 척하며 살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간 큰 남자들을 용서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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