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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성살이] 50대 피부, ‘생긴대로 소신’은 괴로워

등록 2006-12-05 17:56수정 2006-12-05 21:25

여성살이 /

동네 친구 따라 피부과 가서 레이저로 얼굴 잡티 몇 개를 뺐다. 일을 저지를 바엔 모든 잡티를 일망타진하고 싶은데 막상 의사는 내 피부 상태가 심히 불량하다며 심드렁하다. 일단 시험삼아 몇 개 빼보고 경과를 봐서 나머지에 손을 대겠다는 말씀. 마취 연고를 발랐는데도 꼬챙이로 쑤시듯 아프고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났다. 괜한 일을 벌였나? 후회와 기대가 교차하는 복잡한 십여분이 지났다.

주말에 온 남편의 첫 반응은 “브루터스, 너마저?”다. 놀라지 않은 척하지만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닌다는 질책성 눈빛 공격. 이왕 저지른 일, 어쩔테냐? “요즘 이런 거 안 하는 사람 없어.” 본의 아니게 일반화의 오류를 불사하며 정당성 홍보에 급급. 남편은 더 어이없어한다. 평소 잘난 척하며 갱년기 전략 어쩌구 하던 내가 슬그머니 피부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다니.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갈 줄 알았던 기대가 어긋난 탓일까?

석기 시대, 모든 50대 여성은 평균적 피부 상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 시절이 부럽다. 이제 피부는 신분이다. 그 중에서도 중년 이후 여성의 피부는 그가 속한 계급을 상징하게 된 판국이니. 현대 의학의 개가라는 레이저 치료와 주름살 제거술은 그 비싼 첨단 기술에 접근 가능한 계급에게만 ‘굿 뉴스’다. 여러번의 박피로 연예인 못잖은 아기 피부를 자랑하는 내 또래 50대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지 때로 어리둥절하다. 그렇지만 속으론 부럽다. 나이든 여성마저도 나이답지 않은 얼굴을 지닐 수 있게 된 우리 시대. 나이에 걸맞게 나이 들어 가는 걸 가만 놓아두지 않는 현대의학이 미워 죽겠다. 그 배후는 나이듦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을 마케팅 표적으로 삼아 거대 피부미용 시장을 형성한 초절정 자본주의 아닌가?

생긴 대로 나이 들고 싶다는 내 소신은 피부과를 출입처로 삼는 또래들의 ‘부지런함’과 ‘투자정신’ 앞에 빛을 잃는다. 얼굴은 내 삶의 이력서. 삶의 굴곡과 역정을 정직하게 담은 기록문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뭐가 두렵고 창피해 문서 조작을 시도하는 걸까? 이건 심오한 자연주의 철학 내공을 갖추지 못한 내 잘못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피부를 ‘개선’할 수 있고 주름살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정보들과 각종 성공사례들은 중년 여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개개인의 마음 수양 내공만으로 돌파하고 대처하기엔 너무 가혹한 유혹.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달콤한 속삭임 앞에 흔들리지 않는 중년 여성이 있을까? 입으론 내면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면서 실상은 포장에 더 매진하는 시대. 이러다 태어난 얼굴을 고이 무덤까지 가져가는 여성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들에겐 시간의 역류라는 대세에 홀로 꿋꿋이 맞서는 전사의 비장함이 물씬 풍길 것 같다. 양쪽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시대에 영합하는 내가 앞으로 얼굴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광풍과 소신 사이 엉거주춤한 나, 속물일까?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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