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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오래된 정원’의 윤희에게 빚진 느낌…나만 그럴까?

등록 2007-01-23 18:03수정 2007-01-23 20:32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우울해질까봐 못 보겠어.”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러가자고 했더니 한 친구의 대답이 이랬다. 인터넷상에 〈오래된 정원〉은 ‘우울한 정원’으로 불린다나. 영화는 어둡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이 배경. 그렇지만 고독한 영웅담 같은 건 아니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들의 옆에서 살고 사랑하며 그림 그리고 혼자 아이 낳아 기르다 혼자 세상 떠난 한윤희.

영화는 참 잘 만들어져 쇼킹했고 관객이 너무 적어 더 쇼킹했다. 비극적이랄 수 있는 주인공들에 대한 과도한 연민을 경계한 연출, 맘에 든다. 영화를 통해 불유쾌한 현대사를 복습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흥행은 신통찮은 모양. 30대 노처녀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영화와 한 성형미인의 애환을 그린 코미디에 완전 밀렸다.

나는 70년대와 80년대를 줄곧 회색지대에서 살았다. 세상을 바꾸려 뛰어든 이들을 응원했을 뿐 실천하진 못한 부류. 무임승차의 자격지심일까? 〈오래된 정원〉의 오현우들과 한윤희들에게 빚진 느낌이 평생 계속된다.

그런데 30여년밖에 안 된 그 시대를 이제 모두 낯설어한다. 영화 속 “혼자만 행복하면 왠지 미안하다”는 오현우의 대사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게 당황스럽다. 아니 오히려 다들 불편해하는 것 같다. 너의 진지함이 내겐 부담스러운 시대. 영화도 가볍고 명랑한 작품들이 대세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넘쳐 나는 것도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정확히 읽은 것이려니.

이 과도한 쏠림이 내겐 좀 씁쓸하다. 영화 취향에 관한 한 외톨이가 된 듯.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현우들은 성공한 셈이다. 이 비장미 없는 시대는 비장하게 살다 간 오현우들이 준 선물이 아닐까. 그들 덕분에 우린 지금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 대의명분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를 누린다.


오현우들이 70년대와 80년대를 통과한 방식에 이 시대가 별 관심 없을지라도, 굳이 섭섭해할 필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억울한 느낌이 남는다. 결국 그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건 우리들의 문제다.

영화의 중심인 한윤희,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일하고 때로 못 견뎌 소리 지르기도 하며 살아간다.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나 시대에 주눅 들지도 않고 살다 간 그. 작가 황석영이 사랑스럽게 그려낸 한윤희를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만든 30대 여배우 염정아의 존재가 참 귀하다.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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