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무슨 날만 되면 왜 꼭 이러는데?”
성장을 한 여인이 길 한복판에서 휴대전화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 입고 연인을 만나러 나섰다 낭패를 본 모양이었다. 사건의 목격자는 ‘츄리닝’ 차림으로 빵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왜? 초코렛 한 두 조각으로는 이 ‘무슨 날’이 감당이 안 될듯하여 초코케잌에 얼굴을 묻고 빠져 죽으려고.
예쁜 그녀가 소리쳤듯 이 ‘무슨 날’이 항상 문제인 거다. 그녀야, 망친 오늘을 어떻게 보상해 줄 거냐고 항의할 수 있는 불만 접수창구라도 있지. 솔로부대 전사에게 연말연시 시즌은 초죽음이며 우울증의 긴 터널 통과하기다. 나름 ‘어장관리’를 한다고 해도 내 그물에는 피라미 한 분 걸리지 않는다. 위기의 인간관계가 이런 시즌이면 ‘쨍’소리 나게 투명해지는 거다.
외로움을 해체, 분열시키기 위해 일에 몰두하기로 작정했다. 파일 하나를 찾으러 온갖 폴더를 열어보다 수사가 화려한 글 하나를 발견했다. ‘김연이 뽑은 올 한 해의 인물로 선생님이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이하 중략. 지금은 애용하지도 않는 선생님이란 일반명사를 사용한 걸로 보건데 조선조 요조숙녀 모방 시기임이 분명한데 이게 세종시댄지 영, 정조시댄지 구체적 연대가 떠오르질 않는 거다. 파일을 발견한 뒤 24시간 동안 시대 구분과 ‘선생님’이라 불리신 분을 추려내기 위해 용맹정진 했다. 이 정도의 ‘뻐꾸기를 날릴’ 수준이라면 한동안 열심히 ‘들이대며 작업’을 한 게 분명한데 말이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훑고 또 훑어보아도 정답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아찔하게 행복한 거다. 내가 이제 과거의 남자들을 잊기도 하는 모양이군. 딸애의 휴대폰 번호는 말 할 것도 없고 집 전화번호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면서도 정작 잊어버리고 싶은 지긋지긋한 과거는 왜 이리도 물귀신처럼 날 잡고 놓아주질 않는지 저주받은 기억력을 주신 부모님께 그간 원망도 많이 했다. 기쁜 우리 망각이었고 평생 실패만 한 연애의 연대기에서 놓여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묵시록적 사건이었다.
멀리 사는 친구가 전자우편으로 연하장을 보내왔다. 주위에 우리 또래의 이혼녀가 있는데 최근 남자가 둘이나 생겨 삼각관계에 빠져 늙어서 호강한다며 조심스럽게 나의 애정관계를 물어온다. 그러면서 역시나 내 친구답게 혼자 묻고 혼자 대답을 하는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기야, 너의 지성과 열정을 감당할 남자가 어디 쉽게 나타나겠냐? 헛된 기대를 말아야지.’
고맙다 친구야! 항상 이 지성과 열정이 문제지, 그치? 그래! 이 겨울, 언 땅에 삽질은 이제 그만! 외로움이 나의 힘이라고 배에 힘주고 외치다보면 어느 날 외로움이 진정 삶의 원동력이 되어 있을 거야. 자타가 공인한다고 믿고 싶은 이 지성과 열정으로 올 한 해도 오만한 싱글로 살아남아 보자구! 아자!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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