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내 주변에 “깨달은” 남자들이 늘어난다. 이 깨달음은 대개 40대 중반 뒤에 온다. 그건 “여자들처럼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전반부를 남자다운 남자로 살아온 그들, 조직에 몸을 던져 일했고 술 많이 마셨고 온 세상을 쏘다녔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넓은 인맥 구축에 매진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의 눈에 여성들의 사회생활은 폭이 좁고 얕아 보인다. 모여앉아 술도 별로 마시질 않으면서 여성들은 왜 그리 많이 웃어대며 그들의 이야기거리는 끊이지 않는지. 그건 거의 미스테리로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인정한다. 여성들이 왠지 더 신나게 살고 있다는 걸.
‘온전한 남자’로 살아온 이들일수록 잘 안다. 사회생활로 형성한 네트워크의 80퍼센트는 이해관계의 점철일 뿐이며 퇴직 뒤까지 지속되는 인간관계는 그 나머지 20 퍼센트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일 따름이라는 걸 말이다. 한 때 줄기차게 울려대던 손전화와 전자우편도 특정 직책을 떠남과 동시에 잦아든다. ‘인생무상’이란 사자성어와 급친해지는 시점이다. 오, 남성살이의 팍팍함이여!
이제 그들은 여성들의 방식에 눈을 돌린다. 평소 우습게 봤던, 가늘고 길게 가는 우정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세 시간씩 이야기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그들은 한때 경악했었다. 이제는 슬그머니 의심해 본다. 남성들의 음주 문화란 혹시 술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도무지 효과적으로 인간 관계를 구축해 낼 수 없는 남성들의 소심함과 능력 부족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까?
아내들의 모임에 따라 나서게 된다. 아내의 학연이나 아이 과외팀 중심으로 형성된 엄마들의 모임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점이다. 아내의 친구들과 친해진다. 따뜻하다, 즐겁다. 그리고 환영받는다. 새롭게 발견하는 사실 하나, 여성들은 밥을 훨씬 더 맛있게 먹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과 나물에 생선구이가 있는 한국식 한 끼 밥을 짓는 정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수고로운 공정임이 밝혀진 터. 남이 차려주는 밥상에 감동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녀들은 또 자주 집에서 구운 쿠키나 멸치볶음을 물물교환한다. 에센스 워터 스프레이나 각질 제거 크림 같은 사소한 선물을 나누며 좋아라 날뛰는 그녀들. 야심을 품지 않으니 평생이 즐겁다. 단순한 뇌구조, 이제 보니 기쁨의 자가발전소랄까. 남성살이 후반부, 여성살이 방식에서 배우려는 남성들이 늘어난다. 지혜로운 남성들이다.
박어진/칼럼니스트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