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학교 성폭력’ 지역여성이 나서자

등록 2008-07-17 18:06수정 2008-07-17 20:21

대구초등생 집단 성폭력 충격
그 뒤 석달…“그런 일 있었나”
대책은 시늉만…‘여론무마용’
치유프로그램도 학교서 거절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 100여명이 몇 달 동안 집단 성폭력 가해·피해에 휩싸여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 4월 알려지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국회는 어린이 성폭력 범죄자의 형량을 늘리고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국무총리가 이끄는 아동·여성 보호 종합대책 추진 점검단을 꾸렸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은 “전문가로 구성된 사건 대책팀을 꾸려 피해 아동과 가족, 전교생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말했고, 한승수 국무총리는 “성폭력 관련 전문 인원을 늘리고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석 달이 지난 지금, 그 학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사건이 나기 이전 3년 동안 성교육을 하지 않았던 학교는 그 뒤 단 한 차례, 그나마 방송으로 전교생에게 성폭력 교육을 했다고 한다. 여성부가 약속한 전교생 치유 프로그램은 학교가 거절해 무산됐다. 가해자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어린이 11명 가운데 5명이 학교로 돌아갔으나, 어떤 교정 프로그램도 시행되지 않았다.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지탄을 받은 학교와 교육청의 관련자 가운데 징계 받은 이는 당시 교장 한 명뿐이다.

“지금 그 학교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의 조윤숙 공동대표의 말이다. 학교와 교육청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다 보니 이젠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학부모들마저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상황”이라며 “학교 현장이 마치 두터운 벽 같다”고 답답해했다.


사후 대책마저 학교 현장에서 표류하자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7개 단체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 ‘10대 집단 성폭력 특성과 대책 토론회’는 그런 고민 끝에 마련됐다. “학교에만 내맡길 수는 없다. 지역 주민들이 나서야 한다!”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가장 크게 공감한 목소리다. 학교 현장의 부실한 성교육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10시간 성교육 의무, 성폭력 매뉴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 상담교사나 제대로 된 상담실이 매우 부족한 현실이라고 강보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사무국장은 진단했다. 성폭력 사건이 나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문화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학교 폭력과 연결돼 있어 신고하면 위협받을 수 있는데도 부모마저 쉬쉬하는 등 성폭력 드러내기를 지지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강 사무국장은 “성폭력 예방을 위한 학교 주도의 교육이 절실하다”며, 학교장 책임을 명문화하는 등 철저한 관리·감독을 주문했다.

‘지역 공동체 차원의 대응’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는, 이런 교육 당국의 ‘무기력한 대처’ 때문에 더욱 울림이 컸다. 폭력이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춘 지역 주민과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 박신연숙 서울여성의전화 나비센터 지역조직국장의 견해다. “지역사회의 폭력을 뿌리 뽑으려면 마을 단위의 공조가 필요해요. 학부모들이 나서면 그 지역 학교·교육청·사법기관 등이 성폭력이나 학교 폭력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박신 국장은 “기존의 지역 여성 조직들이 함께하면 성 차별적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서울 동작구 여성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도전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소장과 오매 활동가는 이번 대구 초등학교 사건을 2004년 경남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 견줘 보며, 10대 남자 청소년들의 성 문화와 이를 관용하는 사회적 경향을 비판했다.

어린 가해자들은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등으로 다수 남성이 다수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는 양태를 배우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단지 ‘성적 호기심’으로 치부해 문제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미경 소장은 “사건이 날 때마다 무마용 대책들이 나온다”며 “10대의 성적 권리를 고민하는 ‘철학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