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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다’

등록 2008-12-04 14:41

가해자 대부분이 가족·이웃
집유많아 위험에 다시 노출
쉼터 부족·체류기간도 짧아
공공후견인제 등 확대 필요
지적 장애를 가진 10대 청소년이 자신을 키워 온 친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등에게 7년 동안이나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사건과 관련해, 최근 청주지방법원이 ‘피해자를 돌볼 사람이 달리 없다’는 등의 이유로 가해자들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등 30여 장애인 단체들은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 생존권을 혈연과 가족에게 온전히 떠맡기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단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 가족에게만 맡기면 ‘피해 재발’ 위험 피해자 이아무개(16)양은 현재 청주의 한 아동보호 전문 기관에 머물고 있다. 이 기관은 18살 미만인 아동·청소년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이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에 들어갈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장 아홉달이다. 자립을 당장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양은 “절대로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래 가정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할 권한이 있는 아동보호 전문 기관조차 “가해자가 아닌 가족들이 피해자를 데려가겠다고 주장하면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에게 돌아가면 또다시 가해자 가까이에서 성폭력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장애인 부모와 함께 살던 지적 장애 청소년 ㅎ양은 이웃 할아버지한테 몇 년 동안 상습적인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사회복지사에게 이 사실이 밝혀져 ㅎ양은 쉼터에 입소했다. 가해자는 ‘피해자 가족과 합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구금 6개월형을 받았다. 쉼터에서 아홉달을 보낸 ㅎ양이 집으로 돌아오니, 구금형을 끝낸 가해자는 여전히 이웃에서 살고 있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은 “장애 여성에겐 현실적으로 자신의 거취에 대한 선택이 제한돼 있다”며 “가해자였던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성폭력이 되풀이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민병윤 서울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겪은 장애 청소년이 징역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다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도 있다”며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위해 한 조처라곤 9개월 동안 쉼터에 머물 수 있게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 사회적 보호, 선택지 늘려야 따라서 성폭력 피해 장애인을 무작정 가족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가 가족이건 이웃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자를 원래 가정으로 복귀하도록 해서는 피해가 반복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당장엔 쉼터를 확대하고 머물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일부터 시급하다. 성폭력 피해를 겪은 장애인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전국 3곳에서 운영 중인 장애인 성폭력 쉼터뿐이다. 그나마 정원은 30~40명 수준이며 최장 아홉달 동안 머물 수 있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그룹홈)도 곳곳에 있으나 돈을 내야 한다. 장애인 사회복지시설도 있지만, 성폭력 피해를 겪은 장애인을 세심하게 보살필 여력을 갖춘 곳은 드문 형편이다.

동시에 갖가지 지원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병윤 소장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한다면, 공동생활가정에서 무료로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며 생계 보조 방안을 제안했다.

권은숙 청주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공공 후견인 제도의 확대를 제안했다. 가족이 없거나, 가정폭력·성폭력 등으로 가족에게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인은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삼자가 후견인으로서 뒷받침해 주는 제도다. 지금은 미성년자, 한정치산자 등에게만 시행되고 있다. 정부도 최근 “성년 장애인에게도 후견인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복주 소장은 “청주지법 판결 피해자로선 몇 년 뒤 자신이 극구 꺼리는 ‘가해자에게 되돌아가는 것’ 말고 대체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라고 물으며, “피해자가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공동생활가정, 공공 후견인 제도 등 선택지를 다양하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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