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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해녀공동체가 인류유산 된 까닭은

등록 2016-12-02 21:22수정 2016-12-02 21:27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달 30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11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에 분노와 울분이 꽉 찬 듯한 가운데 날아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제주해녀문화에 대해 인류문화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제주해녀문화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해온 지 9년 만의 경사입니다.

왜 제주의 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았을까요? 잠수장비 없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문화의 세대 간 전승, 여성의 역할, 지역공동체 정체성 형성이 높게 평가됐다고 합니다.

제주해녀들은 어머니한테서 물질 기술을 전수받습니다. 처음에는 바닷가 근처에서 물질방법을 배우다 얕은 바닷가에서 해조류 등을 뜯고, 점차 깊은 바다로 나갑니다. 해녀의 어머니도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렇게 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으로 급이 매겨지고 작업구역도 정해집니다. 나이 든 해녀들은 ‘할망바당’에서 물질을 합니다. 바다도 육지처럼 이웃마을 바다와 경계선이 있습니다. 지금도 상대방의 바다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해녀들끼리의 공동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이웃과 공존의 의미를 체득하는 것입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는 곳을 ‘불턱’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은 구실을 하는 곳입니다. 집안 경조사를 알리고, 공동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민주적 토론의 장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마을마다 샤워시설이 갖춰진 탈의장이 설치됐지만, 지금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반도는 물론 일본으로 ‘출가물질’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다롄에도 갔다고 합니다. 몇해 전 일본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해녀 양씨>도 해방 전 일본으로 물질하러 갔다가 눌러앉은 제주해녀 이야기입니다. 해녀들의 디아스포라는 이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해녀 노래 속에는 해녀들의 한과 눈물이 들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한쪽 손에 빗창(채취도구) 들고, 한쪽 손에 테왁(부표)을 메고, 칠성판을 등에 지고, 한길 두길 들어가 보니 저승이 분명하다”고 했을까요.

하지만 제주해녀는 강인합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1월 제주 동부지역에서 제값을 주지 않는 일본인 업자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해녀항쟁에는 연인원 1만7천여명의 해녀가 참가했습니다. 저는 21년 전 해녀항쟁의 주도자인 고 김옥련 해녀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인들의 착취에 맞서 오일장에서 해녀 400~500명이 4명씩 팔짱을 끼고 똘똘 뭉쳐 시위를 벌였다.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강고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던 제주해녀들의 빛나는 투쟁이었습니다.

해녀 연구자들과 제주도는 2008년부터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왔습니다. 제주도는 2009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 조례’를 제정하고, 2011년엔 위원회를 구성해 해녀문화 세계화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요. 2014년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해 이번에 최종 등재됐습니다.

물질은 고된 직업입니다. 해마다 물질을 하다 숨지는 해녀도 여러 명 있습니다. 제주해녀들은 오랜 세월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작업으로 두통이나 이명증에 시달립니다. 직업병입니다. 게다가 해녀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주해녀 수는 60년대 중반 2만5천여명에서 2010년 4995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4377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연령대별로는 70~79살이 1853명(42.4%)으로 가장 많습니다. 제주해녀 경력은 10~20년은 명함도 꺼내지 못하죠. 보통 30~40년 이상은 돼야 물질을 했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해녀의 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의미이겠죠.

제주도는 ‘보물섬’입니다.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에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년)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제주해녀문화까지 합치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보물 5가지를 갖고 있게 됐습니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 이 보물섬을 지키고 가꾸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허호준 호남제주팀장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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