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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회사 밖서도 성폭력 피해 직원 돕는 회사가 있다

등록 2018-08-30 05:01수정 2018-11-01 18:07

[페미니즘 지도를 잇다]
에이본재단의 ‘사내 성폭력’ 대처법

미투, 불법촬영, 편파수사… 분노한 여성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웁니다.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 인식 개선과 사회·정책적 진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쏟아집니다. <한겨레>는 ‘2018년 한국’만큼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낙태죄 폐지운동을 벌이는 아르헨티나 여성들, 여성 할례 폐지를 위해 분투하는 케냐 여성들, 국제결혼 귀환여성들을 돕는 베트남 여성들,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자립을 모색하는 네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페미니즘으로 연결된 여성의 목소리로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려봅니다.

에이본재단이 진행하는 ‘그녀의 에스오에스(SOS)’ 캠페인은 여성이 어떻게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 가상현실(VR) 영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에이본재단 누리집 갈무리
에이본재단이 진행하는 ‘그녀의 에스오에스(SOS)’ 캠페인은 여성이 어떻게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 가상현실(VR) 영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에이본재단 누리집 갈무리

회사는 거의 언제나 가해자 편이었다. ‘미투’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어떤 조직은 가해자의 주장에만 적극 동조했고, 어떤 조직은 침묵과 외면으로 사태를 방관했다. 대응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공통점은 있다.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은 대부분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에이본(AVON)재단’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에이본’이 설립·운영하는 이 재단은 여성 인권과 건강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재단에는 직원 가운데 성폭력 또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회사가 그 직원을 도와야 한다고 명시한 사규가 마련돼 있다. 이는 사내에서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도 적용된다. 회사는 피해자에게 최소 10일의 휴일을 제공하고, 인사팀 직원, 변호사, 여성단체 활동가, 심리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해당 직원을 돕는다. 재단뿐만 아니라 본사에도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세계적 화장품회사 여성인권 앞장
인사팀 접수되면 최소 10일 휴가
변호사 등 팀 꾸려 피해직원 도와
직원이 가정폭력 당할 때도 적용
가상현실 영상 활용한 SOS 캠페인
“남성직원 사내 교육도 힘써
다른 회사 ‘에이본 사규’ 배우러 와”

“만약 사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일단 인사팀에 고발하도록 도와요. 인사팀은 상황을 확인하고 처벌 수위를 정하죠. 상급자한테 치우치지 않고 피해 여성을 항상 보호하면서 해결하려고 하죠.” “변호사나 심리상담사 모두 내부 직원이에요. 회사에 나와 직접 도움을 받는 게 어렵다면 해당 직원의 주거지 인근에 있는 여성단체를 연결해주기도 해요.” <한겨레>와 만난 플로렌시아 야누시오, 아나 알바레스 이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이 설명하는 회사의 모습이 너무 생경해 몇 번이고 되물었다. 아나는 “이 회사는 (사회의) 권리와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폭력이 발생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남성 직원들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이와 관련한) 사내 교육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회사들도 에이본재단의 사규를 배우러 종종 찾아온다. 이런 내용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그는 전했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독특한 캠페인도 있다. 가상현실(VR) 영상을 활용한 ‘그녀의 에스오에스’(#SOSElla) 캠페인이다. 카메라 6대를 활용해 촬영한 이 영상은 여성의 시선으로 가정폭력 상황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이 영상을 판사나 학생들에게 보여줬어요. 여성이 겪는 공포에 대해 말로만 전달할 때보다 훨씬 많이 공감하더라고요. 캠페인 영상은 보통 세가지로 나눠요. 실제로 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해결책을 안내하는 영상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을 교육하는 영상이 있죠. 그리고 아직도 이런 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선 여성이 폭행당하는 상황을 간접경험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요. 이 캠페인처럼요.” 아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의 ‘미투’ 상황을 전하자 그는 “한국 사회는 아직 ‘(남녀가) 동등하지 않은 건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플로렌시아는 ‘미투’ 고발자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싸움을 그만두지 말아요. 누구도 당신에게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지도 말고요. 다른 여성과 연대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요.”

부에노스아이레스/글·사진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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