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변호사이던 2001년, 성관계 뒤 72시간 내에 복용하면 임신을 막을 수 있는 사후피임약 ‘노레보정’의 국내 시판을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었다. 반대하는 쪽에선 성문란 야기, 무분별한 성행위의 증가, 생명경시 풍조의 확산,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의 이유를 들어 종교계를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원치 않는 임신이 낙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불법 낙태시술로 위협받는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라는 등의 이유로 당시 내가 속한 변호사 모임은 노레보정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였고, 많은 여성인권단체 역시 적극 요구하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낙태죄 폐지 찬반 논쟁과도 꼭 닮았다. 결국 노레보정 수입은 허가되었고, 이제는 노레보정 외에도 여러 사후피임약이 도입되어 의사의 처방만 받으면 복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후피임약 도입으로, (사후피임약을 믿고 벌이는) 무분별한 성행위가 증가하였다거나,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오히려 낙태를 감소시켜 여성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도 사후피임약 덕을 보았다.
낙태 동의한 남자는 무죄, 여성은 유죄
2018년 5월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2012년 헌재에서 4 대 4로 6명인 위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합헌이 결정된 지 6년 만이었다. 나는 청구인 쪽 공동대리인단의 일원으로 변론에 참여하였다. 청구인은 낙태한 여성이 아니라 낙태 여성을 도운 의사였다. 2012년 헌법재판소 판결의 청구인은 조산사였다. 정작 낙태죄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처벌받는 것은 여성인데, 낙태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문란한 여성, 이기적인 여성 등) 때문에 당사자로 나서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한편으로는 낙태죄로 처벌되는 여성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간 30만건의 낙태가 시행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기소되는 예는 10건 내외로 매우 드물고, 기소되더라도 선고유예, 벌금 등의 경미한 처벌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낙태죄는 사문화된 조항으로 이미 실효성이 없는데 폐지 논쟁을 벌일 필요가 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기소되거나 처벌되는 사례가 드물 뿐이지 낙태는 여전히 형사법상 범죄이다. 낙태가 범죄라는 뜻은 여성들이 불법적인 의료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시술 뒤에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낙태를 한 뒤에는 언제라도 범죄자로 처벌될 수 있는 굴욕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가 처벌 가능성을 감당해야 하는 불법 낙태는 많은 비용이 들고, 돈이 없는 취약계층 여성은 무면허 의료시술에 노출되어 죽기도 하고,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도 부족하여 자궁 천공 등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몇년 전, 같은 모임의 여자 변호사들이 낙태로 기소된 여성의 변호를 지원한 적이 있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문제는 약혼자가 폭력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도 하혈을 할 정도로 걷어차였다. 그녀는 약혼자가 결혼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임신을 한데다 약혼자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일부러) 소문내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다. 결혼식을 올린 뒤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그의 폭행과 극심한 폭언, 협박은 계속되었다. 임신한 그녀를 배려하기보다 오히려 입덧을 하고 구토를 하면 더럽다고 폭행을 하였다. 아이를 생각하며 참기만 하던 그녀가 그와 결별하려고 하자, 다급해진 그는 그녀의 요구대로 각서를 썼다. ‘당장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되 (그녀의) 임신중절 1년 뒤 폭행이 개선된다면 그때 혼인신고를 하겠다.’
그는 각서를 쓴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와 결별하고 낙태를 하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떠난 것에 앙심을 품고 그녀를 낙태죄로 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녀는 낙태죄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그도 낙태죄의 공범으로 기소됐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녀의 낙태에 동의한다는 각서 때문이었다. 그런데 반전은, 그가 동의를 철회하였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그녀는 벌금 200만원을, 그는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그는 그녀가 낙태를 한 뒤 아이를 지우지 말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낙태 동의 의사를 철회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짧은 임신 기간 내내 그녀를 폭행·폭언했고 심지어 하혈까지 하게 하는 등 그녀를 계속 유산의 위험으로 내몰았었다. 그런 그는 무죄를 선고받고, 아이를 지키려고 하였으나 깊은 절망으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선택한 그녀는 유죄를 선고받아 낙태죄 전과자가 된 것이다. 변호인단은 그녀에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하여 낙태죄의 위헌성을 다퉈보자고 권하였지만, 그녀 역시 낙태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두렵고, 그가 무죄를 선고받은 상황에 절망하여 끝내 포기하였다.
상속 자격 박탈하려 시아버지가 고발
헤어진 여자친구 또는 아내에 대한 앙심으로 그녀들을 낙태죄로 고발한 예는 이 사건만이 아니다. 낙태한 여성들이 기소되는 ‘예외적인 사례들’은 거의 다 이런 경우다. 후배 변호사가 상담해준 사건 가운데 남자친구가 감옥에 간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있었다. 20대 초반의 그녀는 남자친구가 감옥에서 1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낙태를 선택하였다. 남자친구가 석방된 뒤 둘은 다시 사귀었다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가 그녀를 낙태죄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낙태죄로 고발당한다면 우리가 도와주리라 약속했다. 남편이 사망한 뒤 임신 초기임을 알게 된 신혼의 아내가 낙태를 하였는데, 그 시아버지가 그녀를 낙태죄로 고발한 경우도 있다. 그녀를 낙태죄로 처벌받게 하고 사망한 남편의 재산 상속 자격을 박탈하고자 함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변론할 당시 법무부가, 낙태한 여성이나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은 ‘성행위를 즐길 뿐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가 여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법무부가 의견서를 철회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한 여성은 그저 문란한 여성, 단죄해야 할 여성일 뿐이다. 100% 피임이 불가능한 현실과, 성관계에서 여성이 피임의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현실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산을 강요하고 출산 이후의 모든 재앙적 미래(영아 유기와 살해, 자녀 입양, 과도한 양육 책임 등)는 여성이 감당하라는 것이다. 낙태죄로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아직도 낙태는 형사법상 범죄
실제 기소·처벌 연 10여건이지만
언제든 죄인 만들 수 있는 굴레
임신 기간 내내 폭행했던 약혼자
결별에 앙심 품고 낙태죄로 고발
남편 사망 뒤 임신 알고 낙태하자
시아버지가 재산 안 주려 고발
낙태죄 폐지는 세계적 추세
태아 생명권 소중하지만
‘이미 태어난 사람’인 여성이
자기 운명 결정할 수 있어야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되어 있던 한 여고생을 보았다. 그 여고생은 영아살해죄목으로 수용되어 있었는데, 알고 지내던 스무살 남짓한 오빠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 오빠는 임신 사실을 알고 도망가버렸다. 여고생은 임신 초기 불법 낙태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낙태를 하지 못했다. 나이 많은 조부모는 여고생이 살이 찌는 것으로만 생각하였고 여고생은 배를 꽁꽁 동여매고 전전긍긍 생활했다. 어느 날 이른 새벽 진통을 느끼고 자기 집 목욕탕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혼자 아이를 낳아, 무서운 핏덩이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말았다. 여고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결국 체포되었고,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되었다.
너무도 참담한 심정이었다. 어른들 누구도 그 아이에게 안전한 낙태 등 의료 혜택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 아이는 임신 과정 내내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출산한 뒤에도 산후조리는커녕 영아 살해라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그 아이가 영아 살해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과연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아이를 유기하였거나, 시설에 맡겨 입양을 보냈거나, 혹은 미혼모가 되어 온갖 차별과 멸시를 감내하며 아이를 양육했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 가운데 누가 그 아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헌법재판소에서 변론을 할 때 재판관들의 질문은 ‘태아도 생명인데 여성의 권리를 생명 앞에 내세우는 게 맞느냐’는 등 주로 태아의 생명권에 집중되었다. 우리 대리인단은 이번 변론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의 대립구도를 깬 좀 더 진전된 질문과 논쟁이 이뤄지길 바랐었다. 그런데 질문의 80% 이상이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것이었고, 대리인단은 생명 논쟁에 답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낙태를 하는 여성도, 낙태에 찬성하는 여성도, 그 누구도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배 속의 태아일 때든 태어난 뒤든, 아이를 감당해야 할 ‘이미 태어난 사람’인 여성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온갖 어려움은 오롯이 여성에게 짊어지게 하면서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고귀함만을 내세우는 것은 위선이다.
아일랜드도 낙태금지 조항 폐지
그렇게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여 여아인 경우 수없이 낙태가 이루어졌다. 오죽하면 법으로 태아 성감별을 금지했겠는가. 장애아를 임신한 경우는 어떤가. 낳으려고 해도 무모한 선택을 하지 말라며 오히려 낙태를 권한다. 시험관시술 등으로 다태아를 임신한 경우는 어떤가. 선택적 감수술(일부 태아를 낙태시켜 남은 태아 생존율을 높이는 시술)을 통해 사실상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 과거 국가는 인구 조절을 목적으로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의 낙태를 하도록 권유하고 그 성과를 수집하였다. 여성의 사정이 아니라 나라의 사정, 아들을 낳아야 하는 집안의 사정 등 저마다의 사정을 들이대며 낙태를 종용하고 허용했다. 오직 금하는 것은 여성의 사정, 여성의 결정에 의한 낙태뿐이다.
현재 세계의 낙태법은 종교적 죄를 형법상의 범죄로 규율하던 중세 이후의 유산을 극복하고, 형법이 아닌 여성의 선택과 권리에 기반한 법률,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규율되고 있다.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보장적 법과 제도를 구축하고, 불가피하게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8년 5월25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낙태처벌 국가였던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헌법의 낙태금지 조항을 폐지하였다. 아일랜드 여성들은 그들의 삶을 옥죄던 잔혹하고 굴욕적인 족쇄 하나를 벗어던진 것이다. 여성이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자기 운명을 통제할 권리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세계의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와 낙태 비범죄화를 위해 연대하여 싸우고 있는 이유이다.
낙태하지 않기 위해 피임을! 선택하기 위해 교육을! 죽지 않기 위해 낙태 합법화를!
이것이 우리 여성들의 슬로건이다.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두 딸의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생계형 변호사다. 성폭력, 가정폭력,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되고 싶다. 그녀들을 위한 변론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