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④
가족 구성의 권리
‘자연섭리’ ‘전통문화’ ‘성 문란’ 등
호주제 헌소 때 나온 반대 논리들
헌법 불합치로 호주제 폐지 13년
가족 해체 등 현실화되지 않아
성차별적 이념들은 여전히 막강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배제해온
다양한 가족 형태 법 밖에서 ‘차별’
프랑스, 99년부터 팍스법으로 보호
한국도 생활동반자법 등 제정해
법률혼과 동등한 권리 보장해야
가족 구성의 권리
‘자연섭리’ ‘전통문화’ ‘성 문란’ 등
호주제 헌소 때 나온 반대 논리들
헌법 불합치로 호주제 폐지 13년
가족 해체 등 현실화되지 않아
성차별적 이념들은 여전히 막강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배제해온
다양한 가족 형태 법 밖에서 ‘차별’
프랑스, 99년부터 팍스법으로 보호
한국도 생활동반자법 등 제정해
법률혼과 동등한 권리 보장해야
▶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두 딸의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생계형 변호사다. 성폭력, 가정폭력,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되고 싶다. 그녀들을 위한 변론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9월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생각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었다’고 발언한 것이 화제였다. 이제는 후보자가 아니고 장관이 되었으니 그 발언의 배경을 밝혀도 ‘편들기’라는 오해는 사지 않을 것 같아 이야기한다.
# 진선미 ‘같이 사는 남자’ 호칭의 배경
진선미 장관 후보자(이미 장관이 되었지만 이 글에서는 계속 후보자라 칭하겠다)가 변호사이던 시절 나는 그와 함께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다. 당시 대리인단 중엔 비혼이거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가 여럿이었고, 우리는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에는 혼인신고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으로서 최소한의 투쟁 방침이었던 셈이다. 나는 호주제 폐지 전 아이를 출산하고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서 이러한 방침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였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 장남인 동거인(남편)에게 분가 신청을 하도록 한 뒤 주민등록상 나를 세대주로 신고하고 혼인신고를 했다. 동거인이 분가 신청을 하지 않으면 나는 호주인 시아버지의 아들의 배우자로 기재되어야 했는데, 동거인이 분가 신청을 하면서 동거인이 나의 호주가 되었다. 이로써 나의 신분은 호주(나의 아버지)의 딸에서 호주(남편)의 배우자로 바뀌었다.
진선미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배우자를 ‘같이 사는 남자’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서도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은 신념에 따른 것이냐고 물었다. 일반적 용어인 ‘배우자’나 ‘남편’이 있으므로 후보자가 사용한 호칭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후보자는 신념의 문제보다는 버릇, 취향 정도로 설명했다. 아마도 후보자의 그 버릇, 취향은 우리가 함께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을 하던 시절 생겼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호주제 위헌소송을 하면서 위헌성의 논거를 준비하기 위해 꽤나 광범위한 공부를 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가족제도부터 다양한 외국 입법례, 심지어 동물의 세계까지. 그때 한국의 가족제도가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소위 ‘정상가족’(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범주에 있지 못한 다양한 상황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 대리인단은 차별적인 관습과 법에 소심하게 저항한다는 의미로, 배우자나 남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동거인’ ‘같이 사는 남자 또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니 후보자가 사용한 언어는 신념에 따른 용어 사용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지적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호주제도란 무엇인가.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 유지하고 이러한 ‘가’를 원칙적으로 남계 혈통(아들, 손자)에게 대대로 승계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여기서 ‘가’란 현실의 생활공동체와는 동떨어진 추상적 개념이다. 나에 대한 양육권·친권을 가진 어머니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살더라도 나는 어머니와 ‘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가 호주인 ‘가’의 가족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제는 호주를 ‘가’의 중심적 지위에 둔다. 가족 구성원들은 그 자체로서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호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만 존재하여 동등한 가족관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념이 호주제에 전제돼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은 호주의 아들, 아들의 아내는 호주의 아들의 배우자, 아내는 호주의 배우자, 이런 식이다. 호주제 위헌소송 당시 우리 청구인은 부부였는데, 혼인 뒤 분가하여 시아버지가 아닌 남편이 호주로 되어 있었다. 이들 부부는 평등한 부부관계를 원하여 무(無)호주로 바꾸고 싶다면서 호적 변경 신고를 하였는데, 호적관청은 신고 수리 자체를 거부하였다. 당시 민법은 혼인신고를 하면 장남인 경우는 시아버지가, 장남이 아닌 경우에는 자동으로 분가가 되어 남편이 아내의 호주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호주는 아예 불가능하다’며 호적관청이 호적 변경 신청을 거부한 것이다.
또 다른 청구인은 이혼한 여성으로서 자녀들의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지정되어 자녀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와 살고 있던 자녀들은 그녀가 아닌 전남편(자녀들의 아버지)이 호주로 있는 호적에 편제되어 있었다. 정작 어머니인 그녀는 주민등록상 자녀들의 동거인으로만 기재될 뿐이었다. 그녀는 부당함을 느끼고 자녀들을 자신의 호적으로 입적하고자 신고를 하였으나, 호적관청은 당시 민법 규정상 자녀는 아버지인 호주의 호적에 편제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 현대판 ‘삼종지도’의 구현
호주 승계 순위를 보면, 호주제도가 얼마나 양성평등에 반하는 제도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호주 승계 순위는 사망한 전 호주의 아들 또는 손자(직계비속 남자), 미혼의 딸(직계비속 여자), 처, 어머니(직계존속 여자), 며느리(직계비속의 처) 순으로 되어 있어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기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제치고 어린아이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미혼의 딸도 아들이나 손자가 없을 경우에는 호주가 될 수 있으나, 나중에 혼인하게 되면 남편 또는 시아버지가 호주인 ‘가’의 가족원으로 입적되므로(딸이 호주로 있던 ‘가’는 폐가가 된다) 평생을 비혼으로 지내지 않는 한 호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자가 호주가 되는 경우는 남자들이 없는 경우 일시적으로 ‘가’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지는 경우뿐이었다. 호주를 승계할 직계비속 남자가 끝내 출현하지 않는 경우 그 ‘가’는 법상 폐가가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가’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남아선호사상은 유지·확대되었고, 여아 낙태는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호주제도는 현대판 출가외인(出嫁外人)과 삼종지도(三從之道)의 구현이었다. 혼인한 여성에게 남편의 ‘가’에 입적(소위 호적을 파간다고 함)을 강제하여 여성을 출가외인으로 내면화하였다. 여성들은 어려서는 아버지(혹은 오빠 또는 남동생)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편제되도록 하여 호주의 딸, 호주의 아내, 호주의 어머니로 삼종지도의 삶을 내면화해야 했다.
호주제도는 가족의 현실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제도였다. 아버지의 양육권 포기, 재혼 등으로 아버지와 자녀 간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더라도, 자녀학대·성추행·폭행 등으로 가정파탄의 원인을 아버지가 제공한 경우에도, 당사자인 자녀가 아무리 아버지의 ‘가’를 떠나 어머니의 ‘가’에 입적을 원하더라도, 그 자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가’에 소속되고 아버지가 자녀들의 호주가 된다.
반면 어머니는 주민등록상의 ‘동거인’에 불과하게 된다. 이혼한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살고 있더라도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비정상적 가족으로 취급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할 뿐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위헌소송 당시 호주제도 유지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 중 하나는 ‘전통문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계 연구에 따르면 당시 호주제는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하여 일본의 ‘가’제도(일본의 천황제도를 가족제도에 구현한 것)를 조선에 이식한 것으로 광복 이후에도 온존해온 것이었다. 결코 우리의 전통이라 할 수 없었다. 설령 예로부터 내려왔다 하더라도, 현대에 이르러 인권침해적 요소를 품고 있는 제도라면(노비제도처럼)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혈통은 부계로 계승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호주제도는 그 섭리의 구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는 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동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에게 전문가 참고인 자격으로 법정 출석을 부탁했다. 최 교수는 ‘자연에서는 몇 세대만 지나면 부계는 확인할 수 없고 모계 조상(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모계만 확인 가능)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부계혈통 위주의 호주제도는 자연의 질서에 반한다’고 증언하였다.
호주제도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되고 어른 공경이 사라지는 어둠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호주가 과연 집안의 어른이었나. 집안의 어른인 어머니와 할머니가 호주인 아들이나 손자의 아래에 있는 제도가 바로 호주제도였다.
이미 호주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므로 폐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법률상 호주의 권한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과 딸,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를 차별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관념을 지탱하는 호주제는 그 자체로 세상을 지배하는 막강한 이념이자 상징이었다.
호주제도 폐지 이후 ‘가’ 유지를 위한 남아선호사상 등이 약해지면서 가정 내 성차별적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으나,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도적으로도 여전히 부성주의 원칙 등 성차별적 요소가 남아 있다. 미혼모가 자녀를 자신의 성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양육하고 있어도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 그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인지하면 그 자녀는 자신의 의사나 어머니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아버지의 성으로 바뀌게 된다(호주제 폐지로 호적을 파서 아버지의 호적으로 입적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미혼모는 법원에 성 변경 신청을 하여야만 원래대로 자녀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돌릴 수 있다.
# ‘가족 구성’을 권리로!
2005년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여 호주제가 폐지된 지 이제 겨우 13년이 지났다. 호주제도는 훨씬 오랜 세월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성차별적 이념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이미 폐지된 호주제도의 문제점을 다소 장황하게 살펴본 이유이다. 이미 사라졌어야 할 유령들이 더 이상 한국 사회를 배회하지 못하도록,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호주제도가 폐지된 이유를 우리는 자주 곱씹어봐야 한다.
호주제 위헌소송을 하면서 혼인이나 혈연으로 묶여야만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가족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법이 규정한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지 못한 가족과 생활공동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제도권 바깥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호주제도가 현실의 가족이 아닌 관념적인 ‘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였듯, 법이 보호하고 있는 가족도 실제 현실의 가족을 모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법률상 혼인을 원치 않거나 혼인을 할 수 없지만 부부가 되고 싶은 사람들, 혼인과는 무관하고 혈연관계도 아니지만 생활공동체로서 가족이 된 사람들이 법의 보호 바깥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의 구성을 ‘가족구성권’이라는 관점에서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일까. 프랑스의 경우 이미 1999년에 시민연대협약(팍스법)으로 동성, 이성 간의 결합을 불문하고 법률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동등하게 세금공제,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선미 장관이 19대 의원 시절이던 2014년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려 했던 것을 비롯해, 가족 구성을 권리로서 연구하고 제도로 구현하여 현실의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법의 영역에서 보호받게 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장유유서의 전통이 무너지는 등 큰일이 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듯이,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법으로 보호하고 혜택을 주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의 소리가 들려온다. 가족이 해체되고 성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어둠의 세상? 하나만 밝혀두자.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성평등한 세상으로의 한걸음 전진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일러스트 조재석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