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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민변 여성위 “1심 재판부, 안희정 사정만 맹목적으로 배려했다”

등록 2018-11-25 16:20수정 2018-11-25 21:44

민변 여성위, 23일 항소심 재판부에 의견서 제출
“1심 재판부, 성인지 감수성 말하지만 판결엔 전혀 반영 안 돼”
“안희정의 뒤집힌 진술은 용인하고 맹목적으로 배려했다”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8월 18일 오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8월 18일 오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특히 그 판단에 이르는 증거평가를 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처해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성인지 감수성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므로, 일견 피해자가 보인 범행 전후의 언행에 통념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의 모순이나 비합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느끼거나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곤경이나 수치심 혹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조병구)의 안희정 사건 선고문

“성인지 감수성(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실제 사실 판단을 함에 있어선 성인지 감수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위은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위 변호사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심 판결문을 보고 (민변 안에서) 판결문의 어떤 부분에 성인지 감수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는지 분석하고, 실제로 그런 결론이 나오면 2심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민변 여성인권위는 지난 23일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정리한 의견서를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에 제출했다. 9명의 변호사가 판결 분석팀을 꾸려 판결문과 피해자·피고인의 진술 내용을 기반으로 2달여 논의한 결과다.

위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건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늘어날 수 있다. 다른 법률가들도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걸 (항소심 재판부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위는 1심 판결문에 대해 △위력의 행사 여부 판단에 오류가 있는 점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인정범위를 비합리적으로 축소시킨 점 △모순되는 사정들에 대한 판단이 부재한 점 △피고인과 피해자 진술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불공평한 판단기준을 적용한 점 등을 지적했다.

여성위는 특히 “지위나 권세는 그 존재 자체로서 영향력을 가지며, 위력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은 그 상대방이 그와 같은 지위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굳이 자신의 지위나 권세를 확인시키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를 분리해 판단한 1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최근 판결이 선고된 ‘대사관 대사에 의한 간음 및 추행사건’에서도 대사인 피고인이 코이카 직원이었던 피해자에 대해 관리, 감독 권한이 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피고인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인사 등의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하는 관계였다는 점을 재판부가 판시했을 뿐, 피고인이 위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사했는지 여부는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1심 재판부의 이중적인 판단기준도 비판했다. 여성위는 “피해자 진술의 경우 특별히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인 내용이 없음에도 세세한 잣대를 들이대어 의심하고 신빙성을 부정한 반면, 피고인 진술에 대해서는 경험칙에 어긋나고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내용이 있음에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식으로 극명하게 다른 판단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피고인이 스스로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인정했는데도 이를 뒤집는 행태를 법원이 용인한 점, 안 전 지사의 사과를 두고 재판부가 “도지사와 비서라는 지위와 20살 이상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도덕적 죄책감에 따른 사과라고 볼 측면도 없지 않다”고 판단하며 “피고인의 사정을 맹목적으로 배려하는 판단”을 한 점이 그 예다.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증거를 오로지 피해자만 의심하는 근거로 사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위는 피고인와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삭제된 점에 대해 “거의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피해자를 의심하는 근거로 언급됐는데, 문제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누구에 의해 삭제됐고, 어떤 내용이 삭제됐는지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만 불리하게 해석됐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주원씨의 증언을 고스란히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2차 피해를 허용한 점도 문제로 꼽았다. 민씨가 이 사건의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된 내용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실도 없는데 증인으로 채택한 점도 적절치 않은데다 “사실상 피고인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피고인의 아내가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매도하고 비난하는 내용을 여과없이 공개해 언론에 유포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위는 2심 재판부에 “2차 피해를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위 변호사는 이 사건이 단지 하나의 개별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잘 인정이 안 되기도 했고 벌금형 정도로 처벌이 약한 부분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실제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특히 미성년자나 장애인이 아닌 성인 피해자에 대한 위력간음죄에 대한 판례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1심 재판부처럼 위력간음죄의 구성요건을 해석하는 건 저희와 견해 차가 있다. 그런 부분이 (2심에서도 반복될까) 우려가 되서 (민변 여성인권위 차원에서) 의견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오는 29일 첫 공판 준비기일을 연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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