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용기가 만든 1년]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들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고발에 함께하겠다는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묵인해온 비뚤어진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제는 새로운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미투’에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성희롱 피해자인 진정인이 복직 후에 다시 적대적 근무환경에 처함으로써 원치 않는 경력단절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진정인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감안해 진정인을 시비에스(CBS) 전남방송본부 외 근무지로 전보조치할 것을 권고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한 뒤 부당해고를 당한 강민주 전 <시비에스> 피디가 낸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일 결정한 권고사항이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좀 더 적극적인 피해자·가해자 격리 조치를 명시하고 있어 앞선 결정례보다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이후 인권위의 성희롱 관련 결정을 보면 대부분 ‘성희롱 예방,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서 전남 시비에스가 직원 15명가량의 소규모 사업장임을 고려해 강 전 피디가 해당 근무지로 복귀할 경우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던 다른 구성원과도 불편한 관계에 있을 수 있다”, “회사 운영이사회가 지역 유지 등으로 구성돼 지역사회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시사 피디로서 근무환경이 악화될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명시했다. 2차 피해에 노출되지 않는 조처까지 권고한 것이다.
이처럼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건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그동안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 대개 피해자 쪽이었다. 실제로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피해 내담자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2%가 사건 이후 퇴사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57%)은 사건 발생 1개월 안에 이뤄졌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마치 조직에 해를 끼친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엄벌하겠다는 결정권자들의 단호한 조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일상 회복 프로젝트’도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실시하는 이 프로젝트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교육비, 문화비, 여행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50만~70만원 이내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지난해 지원금을 받은 이들은 반려동물 사료를 구입하거나, 여행을 다녀오거나,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데 사용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그동안 가정폭력 등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은 대개 ‘자립하면 돈 준다’는 식이었다. 직업훈련 등을 제공하면서 ‘자립’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자립’ 그 자체, 즉 피해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 일상생활을 유지할 역량을 보장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우울할 것, 혼자일 것, 초라한 모습일 것과 같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일상 회복 프로젝트’는 정면 반박한다. 대신 나를 보듬고, 나를 위해 애쓰라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권한다.
‘미투’를 통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 답은 “피해 뒤에도 왜 직장에 남았느냐”고 묻는 대신 “왜 피해자만 직장을 떠나야 하느냐”고, “힘들다더니 왜 여행을 가느냐”고 따지는 대신 “여행을 통해 치유하고 오라”고 피해자들에게 손을 건넬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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