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폐지를 주장해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11일 헌법불합치 결정 뒤 헌법재판소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했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유지돼 안전한 임신중지 환경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의사낙태죄)으로 조사받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1일 기준 ‘자기 낙태죄’나 ‘의사 낙태죄’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는 8명이다. 검찰은 법 개정 전까지는 법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사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도 16명인데, 이들의 재판도 그대로 진행한다.
당장 보건의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날 “헌재 결정 취지를 감안해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관련 정책을 (어떻게 마련해) 나갈지 (부처에서도) 방향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차차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성을 검증한 유산 유도약 ‘미프진’ 도입도 법 개정 전까진 요원해 보인다. 여성계는 기존 법체계 안에서도 제한적이지만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미프진’ 도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한 의약품 구매는 금지돼 있다. 임신중절을 규율하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유산 유도약에 대한 허가 심사를 할 수 있다”고 원칙만 밝혔다.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생긴 입법 공백이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낙태죄 조항의 효력을 바로 중지하는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재판관 등은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며 해당 조항을 폐기해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신 헌법불합치로 결정해 그 규율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가혹하다”고 명시했다.
박다해 박현정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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