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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2020년이 임신중지 권리 보장의 첫해가 되려면

등록 2020-04-10 19:42수정 2020-04-11 02:3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페이스북 갈무리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페이스북 갈무리

‘낙태죄’를 쓸 때 작은따옴표(‘ ’)를 붙이며 여성으로서, 시민으로서 다시 한번 자긍심을 느낍니다. ‘낙태’와 ‘죄’의 끔찍한 조합이 더 이상 보통명사로 성립하지 않아 따옴표를 치게 된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 시민으로서 말입니다.

4월11일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딱 1년 되는 날입니다. 지난해 4월11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가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야말로 역사적인 날, 여성들의 울분이 다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응답하라0411’ ‘#안전하고_합법적인_임신중지’. 에스엔에스에 등장한 이 목소리들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일하는 석진희입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가가 안 보입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국회도 정부도 그다음 장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며 출몰하는 ‘낙태죄의 유령’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헌재는 ‘2020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시한을 분명히 못박았지만, 그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률 개정안은 2건뿐입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4월 대표 발의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인데요. 이마저도 여성의 요청만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를 14주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를 지적한 헌재의 판단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임신중지는 여성·종교·의료계 등 여러 집단의 입장이 첨예하게 교차하는 사안인 만큼, 총선을 앞둔 국회로선 가급적 피하고 싶은 ‘긁어 부스럼’일 가능성도 큽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을 당시 국회에서는 보수층을 의식해 이번 국회에서는 새 법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어떤 새로운 정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낙태가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도 아닌’ 채로 방치되는 동안, 그 혼란은 고스란히 여성들이 겪고 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길 없는 유산유도제라도 구하려면 온라인 암시장을 기웃거려야 합니다. 주수에 따라 30만~70만원에 이르는 약물 비용, 그보다 더 비싼 수술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이렇게 현실은 ‘그날’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을 내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불법약물 판매 사이트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유통하는 산부인과 병원, 그 어디에도 여성의 안전과 건강, 결정에 대한 존중은 없다”며 정부에 안전한 임신중지 약물을 즉각 도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낙태가 법적 죄라서 금지됐던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은 임신중지 권리 보장의 우선 과제로 꼽힙니다. 물론 안전성이 먼저 검증되어야지요. ‘미프진’의 안전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미프진의 주성분 미페프리스톤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며 안전성을 충분히 확인했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불법입니다. 답답한 여성들은 궁여지책도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국내 사용이 승인된 성분 가운데 위장질환 치료에 쓰이는 미소프로스톨을 선제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겠습니까.

‘낙태죄’가 사라진 곳에는 어떤 법이 자리 잡을까요. 만약 헌재가 정한 시한인 올해 말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형법 27장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어 사실상 ‘낙태죄 전면 폐지’ 상태가 되는데, 이게 더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임신중지와 관련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증발하고,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현실은 더 복잡해졌다. 입법은 중단된 상태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드러낸 의지도 없다 보니 병원은 우왕좌왕하며 수술 가격 통제가 안 된다. 지난 1년간 임신중지를 대하는 여성들의 인식은 높아졌는데, 입법과 정책이 그에 부응하지 못한 간극 속에서 혼란이 가중됐다. 건강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국회가 올해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새 법이 없으면,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을 향한 사회적 낙인이나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이 오히려 무한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낙태죄의 시대’를 넘어 누구나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기를, 개인의 성적 건강이 존중받기를, 아동·청소년과 이주민, 장애인의 임신중지 의료기관 접근성이 높아지기를, 과거 산아제한을 이유로 행해진 불임시술 등을 조사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기를. ‘셰어’가 21대 국회에 제안한 과제입니다. 또 여자들만 나아갑니다.

석진희 토요판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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