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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김기덕의 죽음과 영화계의 이유있는 침묵

등록 2020-12-14 17:34수정 2023-11-15 16:39

달시 파켓 “그를 기리는 것은 그냥 잘못된 일이다”
“감독과 영화가 분리될 수 있다는 건 망상에 불과”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영화감독 김기덕이 2018년 6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영화감독 김기덕이 2018년 6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2018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그의 영화를 수업에서 가르치는 걸 그만뒀다. 누군가가 그런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면, 그를 기리는 것은 그냥 잘못된 일이다. 그가 천재였는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실이 11일 알려진 뒤, 영화 <기생충>의 영어자막 번역가이자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Darcy Paquet)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 트위트는 김 감독의 죽음에 한국 영화계 인사들이 대부분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보여준다.

김 감독은 2004년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은곰상을, 2012년에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의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던 여성에 대한 폭력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수식할 때 빠지지 않던 표현이었다. 2017년 전까지는.

2017년 김기덕 감독은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감정 이입을 위한 연기지도’라는 명목으로 배우 ㄱ씨를 폭행하고 대본에 없는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는 의혹으로 고소당했다. 이어 2018년 3월과 8월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김 감독이 신인배우 등 여러 명의 영화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김 감독은 ㄱ씨와 피디수첩 제작진을 각각 무고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취재 과정을 살펴봤을 때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김 감독은 지난 10월 ㄱ씨와 <문화방송>을 상대로 낸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영화계와 여성계에서는 김기덕 감독에게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멈추고,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자성하기를 촉구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김 감독은 끝내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

김 감독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뒤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추모의 목소리가 나왔고, 곧바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SNS 계정에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라고 애도를 표시해 논란에 휩싸였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김기덕 감독이 영화 현장에서 동료들을 성추행하고 다니며 악영향을 끼친 게 진짜 큰 손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 전력이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lt;한겨레&gt; 자료사진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 전력이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한겨레> 자료사진

거장으로 추앙받던 예술가의 성범죄나 그 의혹이 드러난 뒤,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두고 논란이 인 사례는 해외에도 여럿 있다.

프랑스 영화계 최대 축제인 세자르 영화상은 지난 2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로만 폴란스키의 최근작 <장교와 스파이>를 작품상, 감독상 등 최다 부문 후보에 올린 뒤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프랑스 영화인 200여명은 프랑스 아카데미의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세자르상 운영진은 총사퇴를 선언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아델 에넬은 감독상이 폴란스키에게 돌아가자 시상식 자리를 박차고 떠나기도 했다.

수양딸 성추행 의혹을 받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 &lt;한겨레&gt; 자료사진
수양딸 성추행 의혹을 받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 <한겨레> 자료사진

수양딸인 딜런 패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최근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할리우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우디 앨런의 과거 성추행 의혹이 다시 수면 위에 오르자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배급사였던 아마존은 북미 개봉을 취소했고, 2020년까지 앨런과 영화 4편을 제작하기로 했던 계약도 파기했다. 출연 배우인 티모테 샬라메 역시 ‘우디 앨런과의 작업을 후회한다’며 출연료 전액을 성폭력 공동 대응 단체에 기부했다. 국내 배급사도 포스터에 우디 앨런이 감독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미드나잇 인 파리> 제작진’이라고만 표기했으나, 개봉을 앞두고 논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김 감독 추모에 대한 몇몇 문제제기는 ‘작가와 작품을 구분해야 한다’는 오래된 도식에 의문을 던지는 일인 동시에, 이 구분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김 감독의 죽음에 대해 “대개의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나, 어떤 경우 그것은 또 다른 가해가 된다”고 한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작가와 작품’의 구분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감독과 영화가 분리될 수 있다는 주장, 감독의 사회적 삶과는 별개로 영화를 오로지 미적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지와 관련해 우리 모두 감쪽같이 모른 척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망상에 불과하다.”

김 감독의 생전 인터뷰 일부를 인용하며 애도를 표한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트위트에는 한 누리꾼(아이디 joooooooo)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관철하지 못한 것은 정성일 평론가 본인이 아닌가요”라며 이런 댓글을 달았다.

개인적 친분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떠나 한 개인의 추악한 성범죄에 눈을 감고, 마치 떠나간 거장을 애도하는 듯한 추모 글은 김기덕의 피해자들에 대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김기덕의 추악한 행위를 직면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을 향한 추모라는 기만 밑에 짓밟힌 정의와 윤리, 피해자 인권을 온전히 되돌리는 것. 이것이 없는 영화와 예술이 전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예술은 결코 사람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정정보도문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ㄱ’씨쪽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사는 2019년 1월2일 ‘김기덕 감독 성폭력 알린 여배우, 무고죄 혐의 벗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11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남자 배우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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